산사의 정원이라 불리우며 ‘천년꽃절’, ‘만화방창萬化方暢)’을 자랑하는 선암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입니다.
특히 봄이 아름답다는 선암사에 가면 ‘선암매(仙巖梅)’라 불리우는 수백년 넘은 붉은 고매화(古梅花)가 있습니다.
그래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홍매 피는
선암사에 갑니다.
꽃이 지는 매화나무 아래에서
당신 생각 하겠어요.”
“하나 둘 셋 넷
지는 붉은 꽃잎이 땅에 닿기 전에
내 마음 실어
그대 곁으로
날려 보낼랍니다. “
-김용택 , ‘당신 생각’
‘고매화’란 예로부터 선비들의 지조와 기개에 빗대어 인용되었다지요. 기품 있는 옛 매화. 제 블로그 이웃 가운데 고전의 명구와 함께 묵향 짙은 수묵화를 그려 보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언젠가 그분께서 가지 끝에서 향기를 품어 운치 있게 꽃을 피우는 매화를 블로그에 올리셨는데 얼마나 생생한지 수묵화에서 조차 향이 짙게 나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 였습니다.
선암사 매화의 자태는 겉으로 보면 아리도록 곱지만 그 향은 "코가 에어져 나가는 듯"(최남선) 진하지요. 그래서 이육사 시인은 ‘광야’에서 일제 시대를 추운 겨울에 빗대어 ‘지금 눈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다”고 독립을 향한 고독한 심정을 노래했습니다. 독립을 향한 정신이 매화 향기처럼 널리 퍼져 아득하기까지한 우리 강토에 있기에 시인은 그 겨울을 ‘강철로 된 무지개’라 했겠지요.
매향이 얼마나 진했으면 ‘즐거운 편지’의 시인황동규는 그 향기를 가슴으로 모자라 육체의 안과 밖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피부와 내장으로 마신다고 했을까요.
“선암사 매화 처음 만나
수인사 나누고
그 향기 가슴으로 마시고
피부로 마시고
내장(內臟)으로 마시고
꿀에 취한 벌처럼 흐늘흐늘대다
진짜 꿀벌들을 만났다
벌들이 별안간 공중에 떠서
배들을 내밀고 웃었다.
벌들의 배들이 하나씩 뒤집히며
매화의 내장으로 피어……
나는 매화의 내장 밖에 있는가
선암사가 온통 매화
안에 있는가?”
-황동규 ‘풍장’
선암사 가는 길은 정말 “호젓한 정신의 숲길”입니다.
“나, 이 세상 뜨기 전 마지막으로 걷고 싶은 길. 선암사 가는 길일세. 부도밭 장승백이 지나 산문(山門)에 들어서면, 호젓한 정신의 숲길.”
“승선교(昇仙橋) 아래서 세상 길에 지친 두 발 계곡 물에 담그고, 강선루(降仙樓) 바라보고 싶네. 산그늘 내리는 숲 속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 열반송(涅槃頌)처럼 들려오리. 누각에 달빛 비치고, 날 데려갈 선녀 내려오면, 비단길 서역(西域) 길을 말없이 걸어가는 한 마리 낙타와도 같이, 나 저 허공을 터벅터벅 걸어 서쪽 하늘가 한 개 점으로 사라지려네. 나 이 세상 뜨기 전 마지막으로 걷고 싶은 길 하나. 선암사 길일세”
-변준석,’선암사 길’
그리고 ‘슬픔이 기쁨에게’의 시인 정호승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눈물이 나면...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 앞 /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선암사 해우소, ‘뒷깐 ‘ 맞은 편에 소원을 비는 등굽은 소나무, ‘와송’
소설가 김훈은 선암사 뒷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남 승주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아, 똥이 마려우면 참았다가 좀 멀더라도 선암사 화장실에 가서 누도록 하라. 여기서 똥을 누어보면 비로소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사랑이여, 쓸쓸한 세월이여, 내세에는 선암사 화장실에서 만나자.”고 말입니다.
세상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홀로 단아한 꽃을 피워내 봄을 알리며, 은은하고 매혹적인 향기로 세상을 향해 품어내고 있는 백매화
“참 무던하네요
또 한 겨울 견디어
처음 처럼 살포시 꽃피운 당신
숱한 생채기는
거칠었던 세월의 흔적
뻗뻗한 몸 뒤뚱거리며
호탕하게 춤을 추네요
세상은 불 속이요
가시덤불 숲 인데
어쩌면 당신은
그리도 거칠 것 하나 없다는 듯
차갑고 세찬 바람에
유유히 몸을 마낀 채”
-고매화 / 독운
걱정근심을 덜어없애는 선암사 ‘무우전’ 옆 홍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변할까봐
내 마음 선암사에 두고 왔지요
오래된 돌담에 기대선 매화나무
매화꽃이 피면 보라고
그게 내 마음이라고
붉은 그 꽃 그림자가
죄도 많은 내 마음이라고
두고만 보라고
두고만 보라고”
-김용택 ‘선암사’
눈물이 나면 선암사에 가보시기 바랍니다.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해
눈물이 꽃이 되네요.
그래서 제 마음도
선암사에 두고 왔습니다.
어느 여인이 산사에 떨어진 모란동백 꽃잎을 하나하나 주워 강고한 바위 위에 그녀의 마음을 올려놓으니 차가운 바위가 따뜻한 사랑이 되네요. 스팅의 “Shape of My Heart”가 생각나네요.
그리고 그녀는 남은 떨어진 동백꽃잎으로 산사의 검은 담장에 위에 붉은 점을 찍어서 그녀의 기다림과 그리움을 보여주네요.
https://youtube.com/watch?v=2kDUuohlCvg&feature=share
https://youtube.com/watch?v=Ek4bT0lCUtA&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