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시절은 지나갔고
거기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영화 <화양연화>에서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김선생, 나요. 우리 지금 삼선교에서 막걸리 한 잔하고 있는 데, 어여 이리로 오시오.” 하며 오랫동안 학회에서 알고지낸 선배가 전화를 주셨습니다. 영미 드라마가 전공인 그는 요즘 정년을 앞두고 활발하게 책도 출간하며 인생의 전반기를 부러울 정도로 보기좋게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시를 썼는지 몇권의 시집도 펴낸 어엿한 시인이 되어있었지요. 지난 연말 뜬금없이 ‘고독주’나 한잔하시자며 오랜만에 문자를 주셔서 반가운 마음에 나갔더니 제가 잘 아는 학회 다른 선배와 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저녁자리에서 고맙게도 저를 그 분들의 작은 모임에 정식으로 초대를 해 주셔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모임이 뜸해 궁금하던 터에 이렇게 번개를 치신 것이지요.
마침 시내에 볼 일이 있어 나왔다가 자주가는 스벅에 들려 커피 한잔하며 음악을 듣고 있는데 번개를 맞은 셈이지요.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을 지나 삼선교 나폴레옹 제과점 옆에 위치한 약속장소로 향했습니다. 오후 5시가 지나 삼선교역에 도착하니 옛생각이 솔솔 나기 시작하더군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원 때까지 돈암동 태극당, 삼선교 나폴레옹 제과, 혜화동 로우터리 주변은 참으로 많은 추억들이 아로새기져 있는 곳이지요. 골목 안쪽으로 접어드니 모퉁이에 “이상궁의 전집”이라는 맛갈나는 오래된 음식점이 보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선배는 다른 지인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성북동에 위치한 70년대 돌아가신 천재 조각가 송영수 선생의 유작전을 감상하고 뒷담화 중이었습니다. 자리하신 분들과 인사를 간단히 나눈 뒤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장소 때문에 그런지 문득 대학시절 애송했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고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 만에
우리는 모두 오랜만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 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리고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이 시는 1982년 4월, 『신동아』 212호에 실린 모교 독문과의 은사이시기도한 김광규 선생님의 시입니다. 4.19 혁명이후 1960년대 대학을 다닌 시인이 순수와 이상을 추구했던 청춘을 보내고 이제 세월이 지나 현실에 찌든 중년이 되어 버린 자기 세대의 부끄러운 초상을 윤동주처럼 솔직하게 참회하는 시입니다. 저는 이 시 가운데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는 이 구절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에도 이 시의 풍경은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중년이 지난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와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서 이렇게 한가롭게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데 불현듯 이 시의 다음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1982년 그해 가을무렵 저도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때묻지 않은 고민을 한 적이 있고, 소주병을 들고 가사와 반주없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들을 저마다 목청껏” 부른 기억이 있지요. 저는 대학교 3학년 때 음대생 몇몇과 함께 지금은 사라지고 만 노래패 “선비”를 만들어 동아리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언더그라운드였지요. 그 해 가을 어느날 저는 음대 여자후배와 함께 혜화동 성당에서 개최된 지학순 주교의 시국미사에 참여하고 나오는데, 시위를 막으려는 전투경찰이 성당을 에워싸고 학생들을 해산시키려 최루탄을 마구 쏘아대는 바람에 전투경찰들을 피해서 동아리 후배의 손을 잡고 혜화동 로터리 골목 어느 대포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대포집 주인 아주머니께서 상황을 짐작하셨는지 서둘러 자리를 권하시면서 막걸리와 파전을 내놓으시고, 빨리 마시는 시늉하고 있으라고 하셨지요.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가방에 우겨놓고 함께 간 후배와 막걸리잔을 들고 건배를 하려는 순간, 대포집 문이 스윽 열리면서 중무장한 전투경찰들이 철벅 들어와 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시며 장사 방해하지 말고 어서 문닫고 나가라고 소리치시니, 그들은 우리를 향해 한 차례 보다가 쭈빗거리며 그냥 나가버렸습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마시던 막걸리를 비우고 나서 아주머니께 감사를 표하고, 고마운 마음에 안주와 막걸리를 제대로 시켜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러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대화 소재거리를 찾던 중, 제가 그녀에게 음대 다니는 학생 가운데 운동하는 학생들이 비교적 드문데 어떻게 노래패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묻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한 참 허공을 쳐다보며 말없이 있다가 거푸 막걸리를 두 잔을 마시더니 입을 씻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빠 때문이지요. 대학교 4학년 오빠가 시위 도중에 머리에 부상을 입어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불구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오빠를 생각하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요. 어찌 어찌해서 음대에 오긴했는데, 그냥 나혼자 살자고 음악공부에만 집중할 수가 없구,..... 그래서 노래패를 한다고 음대친구가 소개하기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그녀의 눈가에는 이미 별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없이 그냥 막걸리를 마시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지요.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평생 지울 수 없는 가족의 상처를 마음에 지니고 살아야만 하는 한 여자가 제 앞에서 울고 있는데 무슨 위로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그 대포집에서 끝없이 막걸리를 마시며 우리의 노래가 “밤하늘의 별똥별이 되어 떨어”질 때까지 노래를 불렀지요. 그 무렵 제가 자주 부르던 노래는 이영도 시인의 “진달래”라는 노래였습니다. 저는 조용히 일어나 소주병을 들고 약간 삐딱한 자세로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이렇게요.
https://www.youtube.com/watch?v=Uk8nRiABvX4&feature=share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쓰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이영도 ‘진달래’
가사도 영상도 없던 시절 한 번 일어서면 눈감고 한 10곡 정도는 쭈욱 뽑고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는게 그 시절 노래 예절이었지요. 이 노래와 함께 이 시절 많은 대학생들이 즐겨부른 노래들은 ‘친구,’ ‘공장의 불빛,’ ‘아침이슬,’ ‘늙은 군인의 노래,’ ‘기러기,’ ‘타는 목마름으로,’ ‘서울길,’ ‘선구자,’ ‘상록수’ 그리고 ‘스텐카라친’ 등이 있지요. 이 노래 대부분은 서울대학교 노래패 동아리 ‘메아리’ 노래집에 다 수록되어 있었으며, 노래를 좋아했던 당시 대학생들의 가방에는 ‘메아리’ 노래집이 한 권씩이 있었던 기억합니다. 그 이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란 노래패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지맘요. 아무튼 그 시대는 우리들의 화양연화였지요.
그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미아리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월요일 번개 모임이 있던 삼선교 사거리가 나옵니다. 삼선교는 저의 젊은 시절의 화양연화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맞추러 삼선교에 나와 일을 보고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교회에서 사귄 첫사랑의 그녀와 조우한 기억이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 안에 있는 그녀를 발견하였지요. 토요일 오후로 기억되는 데 저는 무작정 그 버스에 같이 간 친구와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버스 뒤 쪽에 친구와 서있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던진 뒤, 그녀가 집앞 정류장에서 내리자 저는 친구와 함께 따라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냅다 달리기를 하며 줄행랑치듯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함께 온 친구한테 머쓱해 하며 어색하게 헤어진 기억이었지요. 나중에 따로 만나 물어보니 친구와 함께 있어서 순간적으로 겁이 벌컥 나 도망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순수의 시대였지요. 삶이 꽃이었던 “화양연화”말입니다. 교회 피아노 반주를 했던 그녀를 중학교 2학년 때 교회에서 만나 뜨문 뜨문 만나면서 마음 속에 키워온 첫사랑의 그녀와는 결국 대학교 2학년 여름 좋아한단 말 한마디, 손 한번 잡아보지도 못한채 어처구니 없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시절 어찌 그리도 사랑에 서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저의 화양연화는 덧없이 지고 말았습니다. 헤어지고 생각해보니 언제나 그녀가 저를 먼저 찾았음을 뒤늦게 깨닫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나를 더 좋아한 것을. 바보처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수놓은 ‘화양연화’를 최근 이보영과 유지태가 주연한 <화양연화 “삶이 꽃이 된 순간 the flower of life”>에서 재소환하였습니다. 스토리는 시인 최영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고 말한 것처럼, 운동권 선배 한재혁(유지태)을 사랑했던 음대생 지수(이보영)는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재혁이 군대에 끌려간 사이에 말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재혁은 지수를 우연히 다시 만나면서 그들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다시 가느다란 빛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서로 다른 편에 서있는 재혁이 지수에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면 윤상의 “바람에게”라는 말이었겠지 싶습니다.
“혹시 그사람을 만나거든
용서를 빌어주겠니?
홀로 버려둔 세월이
길지는 않았는지...
우연히도 마주치게 되면
소식을 전해주겠니?
아직 그래도 가끔은
생각이 날테니까...
결국 끝내지 못한
그 말 한마디
안녕이란 인사를
함께 가져가주렴
아직 다 못한 사랑이
울고 있는 그곳으로
혹시 그사람을 만나거든
용서를 빌어주겠니?
홀로 버려둔 세월이
길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나를 기다리거든
내 대신 위로해 주렴...
이젠 잊어야 한다고
없었던 일이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4YpY0x3rv3Y&feature=share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뜻하는’ ‘화양연화(花樣年華; the flower of my life)’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온 것은 2000년 홍콩 영화의 거장 왕가위 감독의 장만옥(첸 부인 역), 양조위(차우 역) 주연의 중국 영화 <화양연화>였습니다. 제53회 칸영화제에서는 남우주연상과 최우수예술성취상을 수상하였으며, 홍콩영화평론학회상도 받은 이 영화는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선정한 21세기 100대 영화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한 잘 만들어진 영화이지요. 한 평론가가 이렇게 말한 것이 기억나네요. 이 영화는 “사라진 시대와 가치관에 대한 레퀴엠”으로서 “인간 관계에서의 성실과 진실성 문제를 우아하고 감각적인 왈츠로 보여준다.”(토니 라이언 Tony Ryans)
1962년 홍콩의 한 아파트에 같은 날 이사온 두 부부는 서로 옆집에 살면서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관계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외로운 두 남녀는 분노와 원망을 자제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애틋한 사랑을 하게 되지요. 왕가위 감독은 두 사람의 배우자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고 첸 부인(장만옥)의 우아한 의상과 차우(양조의)의 세련된 자괴감만 페티시에 가깝게 파고듭니다. 그러나 일상은 쉽게 흘러가지 않습니다.두 주인공이 입고 나온 단정한 옷차림에서 알 수 있듯이 도덕적으로 엄격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끝내 선을 넘지못하고 그들의 잦은 만남에 대한 이웃의 시선때문에 헤어지기로 결심합니다.
<화양연화>는 바로 이 예고된 이별의 이야기를 다룬 한 편의 시와 같은 사랑의 영화였지요.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를 입은 고혹스럽지만 도덕과 관습으로 무장한 반듯한 장만옥(리첸 역)의 매력에 무협소설 작가 출신으로 지역신문 기자인 댄디 보이 양조위(차우 역)는 특유의 우수에 찬 표정과 보호본능을 자아 내는 눈빛으로 첸부인과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리고, 서로의 혼밥 삶에 지쳐 식탁 위로를 하기도 하고, 무협소설을 공동작업을 하면서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결국 장만옥을 위해서 떠나야만 했던 양조위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앙코와르 사원에 고백을 하는 에필로그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영화는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하는 자막 속의 한 문장에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에필로그 자막을 통해서 이 영화가 남자주인공 차우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임을 보여준다. “이제 그 시절은 지나갔고/ 거기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양조위와 장만옥 두 배우의 숨막히는 절제된 연기와 아름다운 영상, 그리고 추억에 젖게 만드는 감미로운 음악은 이 영화의 잔상을 더 오래 우리 기억에 남게합니다. 영화음악은 주인공 차우와 리첸의 사랑과 함께 천천히 흘러갑니다. 그 묵직한 첼로 선율은 리첸과 차우의 표정을 읽어가며 그들의 마음을 오선지에 잘 표현합니다. 차우와 리첸은 지나치게 구슬픈 선율에 그들의 운명을 맡기며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의 화양연화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지요.
누구에게나 화양연화가 있듯이 그 화양연화는 꽃이 지듯이 언젠가는 사라지고 맙니다. 모두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때 그 삻이 꽃으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때로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우리들의 ‘화양연화’가 완성되려면 어쩌면 우리가 한 때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했던 것들을 떠나보내야만 합니다. 영화 <화양연화>도 그랬고, 드라마 <화양연화>도 아마 그럴것입니다. 어쩌면 “러브스토리”란 회자정리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곡은 한 때 우리들의 꽃이 되었던 사랑을 떠나보낼 때의 감정을 애잔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Oq_jnvDXV8&feature=share
이 곡은 스즈키 세이준의 1991년 영화 <유메지 夢二>에 쓰였던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유메지의 테마’입니다. 일본 영화음악 작곡가 우메바야시 시게루는 이 곡을 왈츠 풍의 유려한 곡조를 반복적으로 활용해서 양조위와 장만옥 두 남녀의 심리 상태와 변화된 상황을 기묘하게 감정이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베니스에 사는 미국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마이클 갈라소(Michael Galasso)의 연주는 첼로와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며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향수와 갈망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음악의 기본적인 악기구성은 바이올린과 첼로, 어쿠스틱 기타에 의한 피치카토곡(pizzicato)과 각각의 악기에 의해 개별적으로 연주되는 멜로디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귀기울여 들으면 주인공들의 심리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리듬의 변화를 주었는데, 마치 주인공들의 잠재의식의 심장박동처럼 들리도록 매우 낮은 베이스 드럼이 깔리면서 바이올린과 첼로가 함께 따라가는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능가하는 한 편의 영화음악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사실, 제가 ‘화양연화(the flower of my life)’라는 표현을 처음 접한 것은 미국 최초의 여성 퓰리처 상 수상 작가인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의 소설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1921)를 읽고나서였습니다. 미국 영화의 거장 마틴 스코시스 Martin Scorceses 감독이 1993년 영화하기도 한 이 소설은 1870년대 뉴욕 상류 사회의 도덕과 위선, 사랑과 가족에 대한 사실주의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 <화양연화>처럼 제도와 관습에 얽매여 살던 사람들의 '순수하게' 사랑하다 '순수한' 내면의 갈등을 겪고 그리고 '순수하게' 결말을 맺습니다. 이 영화에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원하는 철부지 소녀 메이 웰랜드(위노나 라이더 분)와 정혼한 뉴랜드 아처(다니엘 데이 루이스 분)는 폴란드 귀족과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사별로 청산하고 뉴욕에 돌아온 성숙하고 매혹적인 올렌스카 부인(미셀 파이퍼 분)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처는 그에게 화양연화(the flower of life)가 될 수 있었던 올렌스카 부인과의 사랑을 포기하고 시대의 관습에 갇혀 가정을 지키는 선택을 합니다. 아처가 올렌스카를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었던 찰스 강변 장면에서 그는 그녀와의 사랑을 운명에 맏기기로 하고 이렇게 내기를 겁니다. “저 배가 그대를 지나가기 전에 만일 그대가 돌아본다면 나는 그대를 선택하리라(아래 영화 스틸 사진 참고).” 그러나 올렌스카 부인은 배가 지나갈 때까지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아처를 향해 끝내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합니다.
그러자 아처는 고개를 숙이며 돌아서서 걸어가며 이렇게 생각하지요. 아마 이 대사는 영화에서는 표정으로만 처리한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 작가는 주인공 아처의 마음을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그 순간 아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삶의 꽃, 화양연화였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것을 손에 쥘 수 없으며 일어날 수도 없는 일로 생각했다.
그냥 푸념이라도 한다면 그것은 마치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되지 않았을 때의
절망감 같은 것이었다
Something he knew he had missed: the flower of life.
But he thought of it now as a thing so unattainable and improbable
that to have repined would have been like despairing
because one had not drawn the first prize in a lottery.”
-Edith Wharton, The Age of Innocence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세월이 많이 흘러 아내 메이가 죽은 뒤, 노령의 뉴랜드 아처는 올렌스카 부인이 살고 있는 파리의 그녀 아파트로 찾아갑니다. 그는 끝내 아파트에 오르지 않고, 오래 전 그랬던 것 처럼 그저 멀리서 열린 창문을 닫으러 창가로 다가온 희미한 올렌스카 부인의 그림자를 바라봅니다. 그 순간 오래전 보스톤 강가에서 찰스강 위로 반짝이는 은결을 바라보며 석양을 향해돌아서 있던 올렌스카 부인의 뒷모습과 자신을 향해 뒤를 돌아다 보는 그녀의 눈부신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때 그대가 돌아봤더라면, 아니 우리가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하고 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이렇게 아쉬움을 표하며 기억의 강물 속으로 흘려 보내고 맙니다.
왕가위 감독이 <화양연화>에서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이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마틴 스코시스 감독은 <순수의 시대>를 통해서 삶이 꽃이 될 순간을 놓쳐버린 회한을 영상으로 아름답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 <화양연화>는 무엇을 보여주려 할까요? 아마도 그 결말 역시 옛사랑의 그림자가 아주 희미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요? 제발 해피 엔딩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최근에 <부부의 세계>를 비롯해서 우리 나라 드라마와 영화가 코로나 때문인지 슬픈 결말보다는 해피 엔딩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소설과 같은 드라마의 허구의 세계가 죽음과 이별로 끝나지 않음으로써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역설적으로 삶과 사랑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게 해주지 못하는게 아닐까 염려되는 마음이 한 구석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문학은 독자로 하여금 비극의 역설적 효과를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 토마스 하디의 <무명의 주드>, 케이트 쇼핑의 <각성>, 그리고 이디스 워튼의 <환락의 집>은 모두 주인공이 비극적으로 죽는 것으로 소설이 끝이 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의 남편 레오너드가 작가가 주인공을 소설의 결말에 도대체 죽여야만 하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소중함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함이지요.” 그렇습니다. 독자나 시청자는 소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죽음이나 이별로 끝나는 비극적 파국을 통해서, 현실에서 그들의 삶과 사랑의 가치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지요. <부부의 세계>에서 동해바다 물 속으로 걸어들어간 김희애는 다시 살아 나오지 말았어야 했고, <화양연화>의 유지태도 칼을 맞은 부상에서 회복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래야만이 시청자들은 작품의 주인공들의 비극을 통해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화양연화가 되는 순간이지요. 우리가 코로나 재난 시대에 자유와 건강과 만남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러분이 놓쳐버린 화양연화는 무엇인지요?
어쩌면 이 글을 쓰게 된 까닭은 팬텀싱어 3에서 들은 “레퀴엠”이란 노래를 듣고 나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팬텀싱어의 심사위원 윤상은 지난번 경연에서 윤동주의 “무서운 시간”이란 시를 창작가곡으로 부른 ‘포송포송 FourSongsForSong’ 팀에게 “무서운 시간”이란 노래를 알게해주셔서 고맙다고 극찬하며 만점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며 최고점을 주었지요. 저도 그 “무서운 시간”을 듣고 무서운 마음에 움직여 글을 쓰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는 “레퀴엠”을 불러준 유채훈,최성훈,구본수 그리고 박기훈으로 구성된 “불꽃미남의 전설”에게 감동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단언컨대 이번 경연 최고의 곡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노래는 2006년 미국에서 결성된 클래식 여성 크로스오버 그룹 “쓰리 그래이스 Three Graces”가 2008년 발표한 노래입니다. 팬텀싱어에서 남성 4중창 크로스오버로 다시 부른 이 노래는 원곡을 뛰어넘는 애절함과 웅장함을 동시에 표현함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을 돋게하는 감동을 연출하였지요. 저는 특히 이 노래 가운데 우리 모두의 “화양연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위해 이야기하는 “오! 나 그대의 영혼을 위해 노래를 부르리라, 숨쉬는 숨결마다 고통스러운 내 사랑을 위하여/ 나 이제 그대의 사랑없이 홀로 외로이 살아갈 때/ 나 그대의 영혼을 위해 노래를 부르리라 Oh I will sing my requiem/ To a love that hurts with every breath/ And as I walk alone and live without your love/ I will sing my requiem my requiem to you” 이 부분을 아주 좋아합니다. 저의 화영연화를 기억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모든 것들 말입니다. 이 경연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이나, 옥주현 위원의 아래 깆가막히다는 표정으로 그 때 감동을 대신합니다.
여러분! 코로나가 아직도 끈덕지게 남아있긴 하지만, 이제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이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시고, 조심스럽게 ‘뉴 노말’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화양연화>도 가고, <팬텀싱어>도 끝이 납니다. 모든 것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지요. 언젠가 코로나도 갈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짧고 긴 삶 속에서 떠나 보낸 소중했던 모든 것들을 잠시 생각하시며, 그 모든 떠나간 사람들과, 그 모든 떠난 것들을 다시 기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모든 떠난 것들이 그리고 모든 떠난 사람들이 한 때는 여러분들께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치열하게 사랑했던 ‘화양연화’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분이 붙잡지 못한 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위해 이 노래를 바칩니다. 속이 잠시 먹먹하시다가 뻥 뚤리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떠나보낼 때 부르는 진혼곡, “레퀴엠”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8XUM-Z1XSw&feature=share
As you close your eyes
I'll become a dream
Fading like the last star in the sky
With this final kiss
Stolen from your lips
You must be the strong one do what's right
For you and I
Oh I will sing my requiem
To a love that hurts with every breath
And as I walk alone and live without your love
I will sing my requiem my requiem to you
We met just by chance or just by mistake
The universe was playing with our lives
It was all a game til I realized
You're the one I needed all this time
You saved my life
Oh I will sing my requiem
To a love that hurts with every breath
And as I walk alone and live without your love
I will sing my requiem my requiem to you
I see your face, the rising sun, and then I realized that you are gone
Oh I will sing my requiem
To a love that hurts with every breath
And as I walk alone and live without your love
I will sing my requiem my requiem to you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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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QDWQDEbTSTA&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