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여름 하늘이 너무 푸르러/문득 파아란 바다가 그리워/ 어느새 당도한 바닷가/ 무심히 지는 해 서러워/ 나홀로 서성이는 외로운 그림자. “
바닷가의 모래밭을 보니 오랫동안 잊혀진 시 한수가 떠오른다.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라, 침묵의 하루해만이 또 저물었네”로 시작하는 김소월의 ‘고독’이다. 그 시에서 식민지 지식인 소월이 탄식한 ‘고독’은 대관절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설움의 바닷가”이자 “이즘의 바닷가”에서 고독을 노래한 것일까?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김소월(김정식)이 왜 33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들은 그가 1902년 평안북도 정주 근처 구성이라는 곳에 태어나 서울 배재고보, 일본 동경상과대학서 공부한 시절을 빼면 줄곧 정주에서 지냈다는 점. 그가 이광수, 백석과 함께 정주라는 문학적 공간에서 살아왔으며, 정지용, 나도향, 채만식과 함께 1902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을 같이 했다는 점. 소월(素月)이라는 아호(雅號)는 그가 직접 붙인 것으로, 고향마을 뒷산, 남산봉(진달래봉)의 옛이름 ‘소산’(素山)에서 딴 것이며, 소월이란 ‘소산에 뜬 달’을 뜻한다는 점. 그가 엄혹한 일제시대에 민족의 배움터 정주 오산학교에서 조만식, 이광수, 김억에게 사사한 고독한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이었다는 점. 그가 낭만적인 슬픔을 그 소박하고 서정적인 시구 속에 가장 아름답게 노래하였지만(김우창),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세기말 허무주의와 병적 낭만주의에 빠쪄있었다(김윤식)는 점. 그리고 북한에서 조차 그를 ‘당대현실의 사회주의적 전망이 부족한 세계관의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정서를 아름다운 형식으로 구현한 이채로운 인민시인’ 등으로만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가 식민지 농촌의 절박한 현실인 이향(離鄕)과 유민(流民)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시 세계의 변화를 계기로, 시의 현실반영 문제를 두고 스승 김억과 의견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심선옥)는 사실. 그리하여 그의 시 ‘옷과 밥과 자유’ ‘남의 나라 땅’ 등의 시들은 일제의 검열을 의식해서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연유로 시집에서 누락됐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왜 돌연 193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집에서 술을 마시다 아편 과다복용으로 죽음을 맞이했는 지 등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럼, 그것이 알고 싶다면 우리에게 잘알려지지 않은 그의 시 ‘옷과밥과自由’부터 읽어보도록 하자.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저새요
네몸에는 털이고 것치잇지
밧테는 밧곡석
논에 물베
눌하게 닉어서 숙으러젓네!
楚山지나 狄踰嶺
넘어선다
짐실은 저나귀는 너왜넘늬?
(동아일보 1925. 1. 1)
1925년 12월 출판된 ‘진달래꽃’보다 1년 정도 일찍 발표된 이 시에서 소월은 본문에 옷과 밥과 자유라는 단어를 일체 얘기하지 않으면서 그 결핍을 선연히 드러낸다. 화자는 우선 공중에 떠다니는 새의 털과 깃을 가리키면서 사람들이 헐벗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어서 잘 익은 곡식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화자나 그의 이웃들에게 사실상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나그네임이 분명한 화자는 짐 싣고 재를 넘는 나귀에게서 바로 자신의 고단한 모습을 발견한다. ‘짐실은 저나귀는 너왜넘늬?’란 마지막 구절은 화자의 고단함과 굴레와 자유 없음의 긴 사연을 간결하게 암시한다. 소월에게 옷과 밥과 자유를 모두 빼앗긴 상황이란 헐벗고 굶주리고 자유 없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이었음을 두말할 것도 없다(유종호).
그리고 이어서 소월이 빼앗긴 나라에 대한 통한의 정서를 표현한 중국의 시성 두보의 시 ‘봄’(춘망)을 번역하면서 그의 식민지 시대의 현실관과 의식을 드러낸사실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번역한 시와 두보의 원작시를 비교해보자.
이나라 나라은 부서졌는데
이山川 엿태山川은 남어잇드냐
봄은 왓다하건만
풀과나무에뿐이어
오! 설업다 이를두고 봄이냐
치어라 꼿닙페도 눈물뿐 흣트며
새무리는 지저귀며 울지만
쉬어라 이두군거리는 가슴아
(이하 생략)
- 조선문단 1926.3.
이 시는 두보가 46세 되던 해, 봉선현에서 지내고 있는 처자를 만나러 갔다가, 백수에서 안녹산의 군대에게 사로잡혀 장안에 연금되어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안녹산의 군에게 함락되어 폐허가 된 장안의 외경 묘사와 함께, 난리로 헤어진 처자를 그리며 시국을 걱정하는 비통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제1 · 2구의 대구적 구성은 전쟁 뒤의 어지러운 세상을 꿰는 듯이 허무한 모습을 생생하게그렸고, 제3 · 4구의 '꽃과 새마저도 도리어 슬픔을 돋운다.'는 표현은 우수의 깊이를 보여주며, '꽃과 새'는 주객이 전도되어 표현되고 있다. 경련에서는 계속되는 난리와 가족의 안부를 알 수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렸고, 마지막 구절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동안에 전란과 우국 그리고 가족에의 그리움 등으로 자꾸만 쇠약해지는 자신의 몸을 과장법을 써서 한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안녹산의 반란을 계기로 급속히 악화된 국가적 위기 상태가 가져오는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을, 리얼리즘과 인간애 넘치는 휴머니즘 문학으로 승화시킨 두보의 빼어난 시다.
우리는 이쯤이면 왜 소월이 두보의 시에서 ‘봄’을 번역하고, 그의 ‘고독’이라는 시에서 “봄 와도 봄 온 줄을 모른다”는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 “탄식의 바닷가의 모래밭,” “잊음의 바닷가의 모래밭,” “아쉬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며 그의 고독을 노래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해두고 그의 시 ‘고독’을 다시 읽어보자. 그리고 그가 어느 바닷가의 모래밭에서 느낀 고독의 심연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이 시에서도 역시 소월은 ‘고독’에 대하여 한 마디 언급조차 않으면서도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고독을 선연히 드러내고 있다. 그의 “설움의 바닷가”란 이상화의 봄이 와도 봄을 알 수 없었던 “빼앗긴 들”이 아니런가....
코로나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우리의 봄도 소월의 시처럼 설움의 땅 “봄 와도 봄 온줄을 모른다더라.” 코로나보다 소월의 봄은 “침묵의 하루 해만 저물어 가는” 더 혹독한 재난이었기에....
“고독” - 김소월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라
침묵의 하루 해만 또 저물었네
탄식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니
꼭 같은 열두 시만 늘 저무누나
바잽의 모래밭에
돋는 봄풀은
매일 붓는 범불에 터도 나타나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은요
봄 와도 봄 온줄을 모른다더라
이즘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면
오늘도 지는 해니 어서 져다오
아쉬움의 바닷가 모래밭이니
뚝 씻는 물소리가 들려나다오
———-
침고로 “외로운 바닷가에 황홀이 있다”고 노래한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과 소월의 영향을 받은 백석 역시 바닷가에서의 외로움을 노래한 시가 있다. 소월의 시와 같이 읽으면 한국과 영국의 대표적 낭만가객들의 시를 비교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아 소개한다.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There is a rapture on the lonely shore,(외로운 바닷가에 황홀이 있다)
There is society, where none intrudes,(아무도 침범치 않는 곳)
By the deep sea, and music in its roar:(깊은 바다 곁, 그 함성의 음악에 사귐이 있다)
I love not man the less, but Nature more,(난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
From these our interviews, in which I steal(이러한 우리의 만남을 통해)
From all I may be, or have been before,(현재나 과거의 나로부터 물러나)
To mingle with the Universe, and feel(우주와 뒤섞이며, 표현할 수는 없으나)
What I can ne'er express, yet cannot all conceal.(온전히 숨길 수 없는 바를 느끼기에)
시인 백석
바다 - 백석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 김연수
(고독서원)
https://tv.naver.com/v/4093259
https://www.youtube.com/watch?v=LY8PEolRxT4&feature=share
참고자료:
https://m.blog.naver.com/hanjun105300/221735783332
http://m.gjdream.com/news_view.html?news_type=207&uid=496876
http://www.ziksir.com/ziksir/view/9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