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呼吸)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는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마오.
-윤동주 ‘무서운 시간’ 1941.2.7
한 편의 영화가 읽기 힘든 고전소설을 재탄생시키고, 한 곡의 음악이 잊혀져 가는 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한 때 영화의 탄생, 텔레비전의 발명, 컴퓨터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매체의 발달과 진화로 이미지가 문자를 대처하면서 문학의 시대가 가고 영상의 시대가 올 것이란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그리고 헨리 제임스의 작품이 영화화 되면서 그 동안 읽기 힘들었던 고전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유행이 독자들에게 확산되었지요. 걱정과 우려와 달리 우리는 이미 바야흐로 영화와 음악이 문학을 재탄생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 편의 음악도 잊혀진 시를 새롭게 소생시킵니다. 제가 이번에 낯설고도 새롭게 다시 읽게 된 시는 윤동주의 “무서운 시간”이란 짧은 시입니다. 오랫동안 저의 기억의 저편, 의식의 그늘에서 쉬고 있던 이 시를 한 방송사에서 주관하는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이 재소환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밤늦게 학교에서 집으로 갈 때 벗들과 하늘의 별을 따며 윤동주의 “서시”를 읊조리던 기억이 납니다.
“무서운 시간”이란 노래는 2015년 종로문화재단이 윤동주 시인 서거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제1회 윤동주 창작음악제에서 싱어송라이터 김수진 양이 출품한 곡입니다. 그리고 2016년 이 시는 다른 선율로 동명의 창작가곡형식으로 김주원 작곡가에 의해서 만들어 졌습니다. 먼저 이 노래를 작곡한 김수진 양은 작곡 동기를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고 나서 조국을 빼앗긴 식민지 지식인 윤동주의 절망과 슬픔이 매우 절제된 언어로 표현된 것에 감동을 받아 오선지에 옮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럼, 먼저 팬텀싱어 경연에 참가한 남성 4중창의 노래로 김주원의 창작가곡 “무서운 시간”을 함께 들으시겠습니다. 참고로 이 노래는 미국 예일 음대에서 천재 성악가로 소문난 존 노 군과 우리 시대 천재 국악인 고영렬 군 그리고 결의에 찬 독립운동가를 닮은 독특한 음색의 소유자 김바울, 정민성 군으로 구성된 판소리꾼이 포함된 세계 최초의 남성4중창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FPQRDPKmu8&feature=share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呼吸)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는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마오.
이 노래는 지난 금요일(6월 5일) 저녁에 방송된 후 유튜브를 통해서 이미 10만이 넘는 시청자들이 다시 보기를 했을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좋은 음악을 통해서 한 편의 시가 새롭게 부활하는 순간입니다. 이들의 노래는 단지 윤동주라는 우리 국민 시인의 시에게 새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아니라, 김주원의 창작가곡과 김수진이라는 무명 싱어송라이터의 창작적 재능에 한 줄기 빛을 비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김수진 양의 노래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직접 노래한 제1회 윤동주 창작음악제를 찾아 그녀의 “무서운 시간”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6BkoiVWF38&feature=share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들의 노래들이 늘 그러하듯이, 뭔가 아마추어같은 알 수 없는 음정의 불안과 떨림으로 노래가 시작하지요. 바로 그런 아마추어의 정신이 있었기에 그들의 노래가 더 순수하고 진정성있게 들리곤 했습니다. 김수진의 “무서운 시간”은 남성 4중창이 부른 창작 가곡의 강렬한 화성적 완성도와 비교할 수 없지만, 이 노래는 오히려 나라를 잃어버린 청년 시인의 절망과 깊은 슬픔을 더 애잔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둔중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외롭게 시작하는 그녀의 노래는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처럼 처량히 힘없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하는 부분에서는 시인의 처연한 감성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중간에 윤동주를 닮은 반듯한 어느 청년의 잔잔한 트럼펫 간주는 이 노래의 분위기를 한 층 더해주었지요.
고등학교 시절 시를 공부할 때 시의 뜻을 마음에 담기도 전에 암기를 먼저 해야만 했던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컨대, 만해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공부하면서 여기서 주제는 무엇이고,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고, “님”이란 조국일수도, 부처님일수도, 사랑하는 연인일수도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닐 수 도 있다며, 밑줄 치고 암기하라는 말에 어이없어한 기억들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든 주석들보다도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라는 이 한 문장을 붙잡고 그 학기를 내내 보내고 말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야 알았습니다. 시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윤동주의 시에 대해서도 소중한 많은 연구가 있습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연변에서도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지요. 2015년에는 <시인 동주>라는 소설이 출간되었으며, 이듬해 그 소설을 시나리오로한 영화 <동주>가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아마 윤동주를 모르거나 싫어하는 우리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김윤식, 김흥규, 마광수, 그리고 최근에 김응교 등이 있고, 해외에서는 임윤덕, 김경훈과 리해산 그리고 오오무라 마스오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구가 있었지요.
윤동주가 시를 무기로 일제에 맞선 민족저항시인이라든가, 일제에 저항했다기 보다는 자기자신의 부끄럼을 그 누구보다 솔직하게 표현한 국민서정시인이라든가 하는 엇갈린 평가도 있었지요. 그리고 “무거운 시간”에 대해서도 윤동주가 영문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이상섭, 김우창과 같은 우리 시대 내로라하는 대표적 영문학자와 문학비평가들이 서로 다른 주석과 해설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한 편의 시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저 그 시를 읽고 그 시심에 가닿을 수 있는 독자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먼저이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이렇게 한 편의 잘 빚어진 노래를 통해서 그 시인의 마음에 다가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시에서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라는 구절이 참 좋았습니다. 이 싯구를 통해 윤동주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구절은 후반부 “서럽지도 않는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에서의 시인의 마음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윤동주의 “무서운 시간”이 새삼 무섭게 읽히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윤동주는 생전에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Carry Me Back to Old Virginny”라는 ‘흑인 영가 Negro Spiritual’를 자주 읊조렸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yhQYOxTHaw&feature=share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성전 위하여 땀 흘려가며
그 누런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Carry me back to old Virginny,
There's where the cotton and the corn and taters grow,
There's where the birds warble sweet in the spring time,
There's where the darkey's heart am longed to go.
There's where I labored so hard for old massa,
Day after day in the field of yellow corn,
No place on earth do I love more sincerely,
Than old Virginny, the state where I was born.
이 흑인 영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제임스 A 블랜드(James A. Bland, 1854~1911)가 고향에서 강제로 끌려와 노예로 살아가는 흑인들이 1840년경 부터 부른 노래들을 미국 남북전쟁(1861~1865)당시 마찬가지로 고향을 떠나 전쟁터에서 죽음을 앞둔 남부 병사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개작하여 작사, 작곡한 노래입니다.
미국문학사에서 흑인 영가(spirituals)는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시작할 때부터 불려온 흑인들의 종교적 노래이자 문학이었습니다. 이 종교적 색채의 영가는 교회에서만 불려진 것이 아니라, 일할 때나 쉴 때나 그리고 흥겨운 놀이시간에도 불리워진 우리들의 노동요와 같은 흑인 저항 문학의 전통적 장르입니다. 그들이 폭력적인 노예제도에 맞서거나 그들의 인간성이 부정 당할 때 즐겨 부른 노래이지요.
이 흑인 영가는 기본적으로 2개 주제를 기골격으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All God’s Children”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은 인간의 본향이 아니라는 The world is not home.”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에게 죽음은 아이러니하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안식과 평화가 넘치는 진정한 고향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960년대 흑인인권운동의 기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가장 좋아했다는 흑인 영가를 하나 소개합니다. 1844년부터 구전되어 내려온 이 노래의 제목은 “주여, 저를 데려가 주소서 Take My Hand, Precious Lord”입니다. 오랜만에 엘비스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어보시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tGRkVx-C-I&feature=share
주여, 저를 데려가 주소서
거센 폭풍과 어둠 속에서
저는 약하고 지쳐 힘드옵니다
저를 빛으로 인도하소서
주여, 내 손을 잡아
본향으로 이끄소서
Precious Lord, take my hand
Lead me on, let me sta-and
I am tired, I'm weak, I am worn
Through the storm, through the night
Lead me on to the li-ight
Take my ha-and, precious Lor-ord
Lead me home
일이 마치고
내 삶이 다하는 날
그 빛을 들어서
하늘의 밝은 도시를 보여주소서
주여, 내 손을 잡고
고향으로 보내주소서
When my work is all done
And my race here is are you-un
Let me see-ee by the light
Thou hast shown
That fair city so bright
Where the lantern is the li-ight
Take my ha-and, precious Lor-ord
Lead me on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이 노랫말처럼 고난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정처없는 망명적 삶을 살다가 일을 마치고 그렇게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는 그렇게 죽음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일을 마친 것이지요.
윤동주가 “내 고향으로 날 보내”달라는 미국흑인영가를 즐겨 부르며 살아간 이유도 아마 그의 영원한 망명의식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는 스물아홉해의 짧은 인생 동안 만주 용정에서 태어나, 명동학교, 평양 숭실학교, 서울 연희전문학교, 그리고 일본 동경과 교토 등지를 시와 함께 살다가 해방을 앞두고 일제의 감옥에서 옥사하였지요. 그야말로 윤동주는 비운의 디아스포라 시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윤동주가 고향을 그리도 그리워한 까닭은 그가 어디에 있으나 조국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빼앗긴 나라는 그에게 진정한 고향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하고 노래한 것이 아닐까요. 윤동주의 하늘은 그토록 그가 그리워한 조국강산이었을 채지요. 그는 잃어버린 고향을 다시 찾고 싶었지만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갈 수”는 없는 존재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생전에 “빼앗긴 들에는 봄은” 끝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윤동주처럼 불의한 권력에 의해 자신의 고향을 상실해버린 유태인 비평가 아도르노(Theodore Adorno)는 “돌아갈 곳이 없는 자에게는 글쓰기가 바로 고향 For a man who no longer has a homeland, writing is a place to live”이라고 말한 바 있지요. 윤동주에게는 어쩌면 그의 시가 ‘고향’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에 그는 언제나 “내 고향으로 날 본내주/ 오곡백화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라고 노래했던 것은 아닐까요.
윤동주가 평소에 고향이 그리워 흑인 영가를 즐겨부르며, 자신을 “이 늙은 흑인”에 비유한 까닭은 자신도 흑인처럼 문화적 근원으로부터 송두리째 뿌리뽑혔기 때문이겠지요. 그가 흑인 영가를 즐겨 불렀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이 “무서운 시간’을 읽고 있는데, 문득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아폴리스에서 경찰의 무릎에 깔려 “숨쉴 수 없다”는 말 한 마디를 내뱉고 죽어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라는 흑인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윤동주의 “무서운 시간”이 조지 플로이드의 “무거운 시간’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추모예배에서 설교하는 알 샤프톤 목사
조지 플로이드가 죽으면서 내 뱉은 단 한 문장이 “엄마,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살려주세요 I can’t breathe, Mama, please”였다고 합니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죽는 순간에 그는 생명의 고향 어머니를 찾았던 것입니다. 조지 플로이드 추념 예배에서 미국의 흑인인권운동가이자 침례교 목사인 알 샤프톤Al Sharpton은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숨이 막혀 죽기 직전에 “어머니”를 찾은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가 죽는 순간 그의 어머니가 나타나 그의 죽음을 맞이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나는 조지가 죽는 순간에 왜 엄마를 불렀는 지를 알고 있습니다....왜냐하면 그가 죽는 순간에 그의 어머니가 나타나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며 다음과 같이 말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요.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아들 조지야, 이 사악한 세상에서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이제 너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편히 쉬거라. 이제는 그 어떤 경찰도 더 이상 네 목을 누를 수 없는 곳으로, 이곳으로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아들, 조지야I know why George was calling for mama....Because at the point that he was dying, his mother was stretching her hands out saying, ‘Come on, George, I’ll welcome you where the wicked will cease from troubling. Where the weary will be at rest. There’s a place where police don’t put knees on you George. Maybe mama said, ‘Come on, George.”
조지 플로이드는 어쩌면 죽는 순간에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의 부름에 윤동주처럼 이렇게 응답했을지도 모릅니다.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呼吸)이 남아 있소/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나를 부르는 것이오./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서럽지도 않는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나를 부르지마오.”라고 말입니다. “무서운 시간”이 그토록 무섭게 나가온 이유는 바로 숨조차 쉴 수 없었던 일제 식민 지배하의 윤동주와 백인인종차별에 의해 숨막힌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절망과 슬픔이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 공개된 정지용 시인이 서문을 쓴 윤동주의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의 초판본
“무서운 시간”이 제게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시에 깊이 베어있는 시인의 고독과 외로움 때문이었습니다. 시인 백석과 함께 조선의 말을 가장 아름답게 시로 승화한 정지용은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본 서문에서 동주가 1945년 2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씁니다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며 본 적도 없이!.”
그렇습니다. 윤동주는 정말 고독하게 살다간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고독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좋아했고, 바람에 스치우는 별처럼 고독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고독하고 외롭게 느껴진 이유는 그가 그토록 좋아한 시들을 생전에 한 편도 제대로 발표조차 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기 때문입니다.
윤동주가 고독하고 외로웠던 까닭은, 그가 좋아했던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자신이 만든 그 시로부터, 또 자신이 속한 그 조국으로부터, 그리고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이지요. 그 ‘소외’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다시 ‘절망’으로 치달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의 “무서운 시간”이란 “죽음에 이르는 병”과도 같은 절망의 시간이었던 것이지요(안소영).
윤동주를 “외롭게 대화하는 자”로 해석한 중국 연변대학 김경훈 교수의 <중국 조선족 시문학 연구>
중국 조선족 연변대학의 윤동주 전문가인 김경훈 교수는 그의 책 <중국조선족 시문학 연구>에서 시인 윤동주를 “외롭게 대화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교수는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고독과 외로움을 재조명하면서, 윤동주의 고독과 외로움은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며 일제에 분연히 저항하지 못한 그의 맑은 양심과 부끄러운 참회를 통해서 잘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윤동주의 고독은 참으로 뼈를 깎는 자아 성찰의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김경훈이 윤동주를 “외롭게 대화하는 자”로 평가한 것은 바로 윤동주가 평생을 조국을 온전히 가져보지 못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통해 스스로와 대화를 나눈 그의 성찰적 고독을 시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끝내 자신의 마음의 고향이었던 시 한 수조차 제대로 세상에 선보이지 못한 채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처럼” 떨어져 버린 것이지요. 정지용의 말처럼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서” 말입니다.
소설가 최인훈이 그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사랑했던 은혜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채 죽었음을 뒤 늦게 깨닫고 그 사랑을 재확인하는 장면에서 던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우리 문학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그 한 구절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여인의 용기”처럼 윤동주 역시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시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소설 <시인 동주>를 쓴 안소영은 “무서운 시간”을 포함해 후기의 윤동주의 시를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까지, 슬픔의 웅덩이 깊은 곳까지 닿아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였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그런 시들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맑고 고요한 눈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도 했지요. 여기서 “맑고 고요한 눈을 잃지 않은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윤동주는 “무서운 시간”을 쓴지 석달이 지난 1941년 5월 “십자가”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우리의 맑고 고요한 시인 윤동주는 그 ‘무서운 시간’이 다가오자 끝내 “서럽지도 않은” 푸르른 가랑잎처럼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렸던 것이지요. 시인 윤동주가 그립습니다.
<고독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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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일제에 의해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처럼 떨어”져버린 우리의 윤동주와 2020년 5월 25일 미네소타 미네아폴리스의 길바닥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깔려 처참히 죽은 조지 플로이드의 두 죽음, 그들의 “무서운 시간”을 추념하면서, 미국 공영방송 PBS가 제공하는 세계적인 트럼펫 연주자 크리스 보티Chris Botti와 한국계 이탤리언 바이올리니스트 루시아 미카렐리 Lucia Micarelli의 애잔하면서 감미로운 이중주를 함께하시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8NN4fpdm40&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