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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고독 속에 버려두라”: 법정의 무소유 향기

고독서원 2021. 4. 2. 15:50
법정스님(1932-2010) 불일암 벽에 걸려있는 법정스님 영정사진

“아름다운 계절에 어떤 꽃을 피울지 생각하라”
“봄꽃처럼 맑고 향기로운 삶을 피워야 한다.”

법정스님을 모신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우측 나무 그늘 대나무 울타리 한평남짓 공간에 무소유로 영면해 계신다. 누군가 꽃다발을 두고 가셨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송광사는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僧寶)사찰로서 유서깊은 절이다. 대웅전 앞 백매화가 피었고불일암 서적으로 가는 길에 작은 천이 흐른다.

어느 맑은 봄날 법정스님께서 계셨던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 다녀왔습니다. 전남 조계산 기슭에 위치한 송광사는 조선 3대 사찰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대표적 불교사원입니다. 대웅전 앞에 송광매가 막 꽃봉오리를 피우고 있고, 작은 개천(불일천)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송광사 해우소
불일암가 는 푯말

대웅전에서 백매화를 바라보며 우측으로 내려가면 해우소와 성보박물관을 지나면 불일암으로 오르는 ‘무소유길’이 열립니다. 법정 스님이 혼자 걸어 오르내리던 그 길을 따라 가다보면 법정스님께서 남기신 향기로운 글들이 돌판에 새겨져 있지요. 그래서 무소유길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 길을 물리적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법정스님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입니다.

“완전히 혼자일 때
완전한 자유가 찾아온다.
쓸쓸한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아무도 없는 곳을 혼자서 걸어가라.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말고
나 자신만이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완전한 혼자로 걸어라.

기대를 하고 혼자 걷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도리어 혼자의
충만한 기운을 악화시킨다.

완벽하지 않는 고독은 고독이 아니다.

홀로 있음을 연습하라
홀로 외로이 느끼는 고독 속으로 뛰어들라

철저히 혼자가 되어
그 고독과 벗이 되어 걸으라.
외롭다는 느낌,고독하다는 생각이
모처럼의 홀로있음을 방해하려 들 것이지만
결코 그 느낌이나 생각에 속을 필요는 없다.
그 느낌이 바로 깨어있음의 신호탄이다.

외로움! 그 깊은 뜰속에
우리가 찾고 있던 그 아름다움이 숨쉬고 있다.

홀로 있음이란
나 자신과의 온전한 대면이다.
속뜰의 본래 향기를 은은히 피어오르게 할 수 있는
소중한 때다.

바깥 세계하고 마주하고 살면
온전한 나 자신과 마주할 시간을 잃고 만다.
도리어 그것은 얼마나 큰 외로움이고 고독인가

바깥으로 치닫게 될 때
많은 군중들 속에 깊이 빠져들 때
사실은 그 때
우리 속 뜨락은 외롭고 고독하다.

온전히 혼자일 때
우린 완전히 자유롭다.
완전히 하나될 수 있으며
참된 나를 만나고 또한 참된 너를 만나게 된다.”

-법정스님, ‘혼자 걸어라’

그럼, 법정스님이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무소유길을 함께 걸으시겠습니다.

송광사에서 불일암으로 오르는 ‘무소유길’에 군데 군데 법정스님의 어록이 그림처럼 놓여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법정스님 <산에는 꽃이 피네>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
그 일에 전신전력을 기울이라.
그래서 당신의 인생을
환하게 꽃피우라”
— 법정스님 <오두막 편지> 에서

“명상은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이기 바라봄이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끊는 번뇌를 내려놓고
빛과 소리에
무심히 마음을 열고 있으면
잔잔한 평안과 기쁨이 그 안에 깃들게 된다.”
— 법정스님 <오두막 편지>에서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감소함에 있다.”
— 법정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 법정스님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봄날 불일암에 오른 수선화, 목련 홍매, 백매 그리고 이름모를 들꽃들이 피어있었습니다.

불일암 암자 우측 벽에 평생 자연인으로 살기를 희망했던 법정 스님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청산별곡’이 걸려있다. '청산별곡'은 고려 시대에 쓰여진 작자 미상의 고전시가이다. '청산별곡'은 "얄리얄리 얄랴셩 얄라리 얄라"와 같이 입에 착 달라붙는 후렴구와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처럼 반복에 의한 뛰어난 음악성을 가지고 있어 고려가요가 가진 형식적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더불어 현실의 고통과 비애를 벗어나 청산과 같은 이상향을 꿈꾸는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고도의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기에 뛰어난 문학성을 가진 작품이다.
송광사 불일암에 가면 홍매화 백매가 한 뿌리에서 꽃을 피우는 신비로운 매화나무가 있다.


https://youtube.com/watch?v=K44pEqFWF7Y&feature=share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들으시면 법정스님께 잘 다녀오셨는지요? 그럼 마지막으로 법정스님이 2010년 3월 11일 입적하시기전 길상사 마지막 법회에서 암송하신 서정주의 ‘푸르른 날’과 소동파의 ‘적벽부’의 한 구절을 함께 들으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서정주 ‘푸르른 날’

“저 강물의 맑은 바람과 산중의 밝은 달이여 /귀로 들으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니 빛이 되는구나 /가지고자 해도 말릴 사람 없고, 쓰고자 해도 다할 날 없으니 /이것은 천지자연의 무진장이구나.” — 소동파, ‘적벽부’에서

그러니 “가끔 고독 속에 버려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