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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고독서원 2020. 10. 31. 11:12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이 말은 내가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 ‘애피톤 프로젝트’의 노래 제목이다. 처음에 들었을 때에는 표현이 다소 생경했지만 노래를 들을수록 그 아픔이 마음에 와닿아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신체의 일부로 동일화함으로써 기존의 사랑의 아픔에 대한 관조적 공감을 걷어낸 일체적 연민의 표현이라 하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의 아픔까지 온몸으로 기억해내려는 단 하나의 진실한 문장.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그 사람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만 같았다.

롤랑 바르트(프랑스어: Roland Gérard Barthes, 1915년 11월 12일 ~ 1980년 3월 26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J'ai mal à l'autre)”는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단편적 글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모아 발표한 <사랑의 단상(A Lover’s Discourse)> (1977)에서 소제목으로 사용한 문장이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 씨가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읽었던지, 아니면 바르트와 감수성이 통했을 수도 있다.

사랑의 단상’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지성 롤랑 바르트가 철학과 심리학, 정신분석학을 넘나들고 문학과 예술과 인생을 아우르며 들려주는 사랑에 관한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사유이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담화를 다각도로 정리하였다. (단상 :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5]) ‘사랑의 단상’의 원제는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이다. 직역하면 ‘사랑 담론의 단편들’이다. 그러나 바르트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이 책에서 사랑에 관한 철학적 담론이나 수필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글의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영어번역 제목인 ‘연인의 담론’이 저자의 의도에 가장 가깝다는 해석도 있다. 이 글은 독자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사랑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분류는 인문학과 정신분석학으로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사랑하는 사람을 단순히 어떤 증세가 있는 환자로 환원시키기를 거부하고, 사랑이라는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부조리하며 고통스러운 욕망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위로하고 격려한다.(출처 위키피디아)


이 문장이 담긴 바르트의 그 챕터는 이렇게 시작한다.

“연민 COMPASSION. 사랑의 대상이 사랑의 관계와는 무관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불행하거나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끼거나 보거나 알 때,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격렬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쇼펜하우어

그리고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그 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그를 느낀다고 가정한다면—쇼펜하우어가 연민(compassion) 이라 부르는 것, 혹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고통 속에서의 결합, 고통의 일치라 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르트는 “사랑의 힘이 어떠하든 간에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끔찍한 일이기에 나 또한 동요하며 괴로워하나, 동시에 냉담하며 젖어들지 않는다. 나의 동일시는 불완전한 것이다.“라고 결론 짓는다.

그래서 연민은 그저 연민으로 끝나고 말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의 영혼의 아픔마저 온몸으로 느끼고자 하는 이 신체적 비유는 탁월하다.

쥴 미쉘레와 그의 대표작

바르트 역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말을 자신이 존경한 19세기 프랑스 소설가이자 역사학자인 쥘 미쉘레(Jules Michelet)의 저 유명한 “나는 프랑스가 아프다 J'ai mal à la France”라는 말에서 가져왔다. <프랑스사>와 <프랑스 혁명사>로 잘 알려진 미쉘레는 조국 프랑스를 자신의 신체로 비유하여 역사를 기록하면서 프랑스 역사의 아픔을 일체화하려한 상상력과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지식인이었다. 바르트는 <미쉘레Michelet>라는 책을 시작으로 프랑스 철학과 비평계의 총아로 등장한다.

바르트의 데뷰작으로 알려진 <미슐레>

바르트는 미쉘레의 조국을 연인으로 환치한 것이다. 불현듯 안중근 선생의 말이 기억난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에서 안의사는 하얼빈 거사 직전에 긴장된 표정으로 제자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결행 의지를 표현한 이 말을 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고 그 사람을 버릴 수 없듯이, 조국이 식민치하에 신음하고 있다고 조국을 버릴 수 없다. 조국은 연인과 같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고통과 죽음이 명백한 그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뚜벅뚜벅 걸어 간 것이다.

바르트에게도 조국 프랑스를 사랑하는 마음은 미쉘레와 같았으리라.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안의사처럼 조국과 연인을 일체화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르트의 연인에 대한 연민은 건강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는 일심동체적 연민이 가져올 자기파괴적 위험성에 거리감을 둔다. 나는 그 사람이 이프지만 나는 살아남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단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조금 떨어져 있자.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하자. 타자의 죽음 뒤에 홀로 살아남는 그 순간부터 모든 주체의 입에서 나오는 저 억압된 말, ‘살자(Vivons!)’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자.”-<사랑의 단상>

그렇다. ‘살자(vivions)’하며, ‘비봉’을 외쳐야 한다. 바르트는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연민하면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품격을 잃어버리지 않은 건전한 연민을 품고 끝내 살아남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압박하지도', 정신을 잃지도 않으면서 그와 더불어 괴로워하리라. 아주 다정하면서도 통제된, 애정에 넘쳐흐르면서도 예의바른 이 처신에 우리는 '신중함/부드러움'이란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연민의 '건전한' 형태이다.”-
<사랑의 단상>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윤교수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극단적 선택을 하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어느덧 세월이 많이 지나 그 민주화 운동권 세력이 정권을 잡아 졸속으로 줄지어 낸 부동산 정책에 실망한 한 시민이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으로 결혼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리고 말았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청원을 올린 그 시민에게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라고 말한다. 아니 나는 우리 대한민국 젊음이들이 아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살아남아야한다. 분노하고 투쟁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0OngUeo9-U&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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