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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변산의 비단옷

고독서원 2021. 6. 13. 08:01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변산 ‘샹그릴라’ 펜션 사장님이 찍으신 펜션 앞 노을 정경

변산에 다녀왔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의 주인공 학수(작정만 분)가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다던 그 변산. 여주인공 선미(김고운 분)가 “장엄하고 이쁘면서, 이쁨서도 슬프고, 슬픈 것이 저리 고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슬픔이 아니겠다”고 말하면서 첫사랑 학수에게 고향의 “노을빛이 비단옷을 입혀주는 것 같”다고 말한 그 붉은 노을을 가진 변산. 그 변산에 다녀왔습니다.

2018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lt;변산&gt;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조선 팔도의 모든 바다를 다 다녀왔지만, 전라북도의 바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바다를 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 교회에서 충남 웅천 무창포로 하계수양회를 갈 때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교회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서울 보문동을 떠나 웅천읍내를 지나서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 논두렁 옆길을 따라서 무창포에 접근할 때 차창밖으로 보았던 파아란 바다의 수평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21.6.8 변산 ㅣ서해바다의 수평선

그 이후로 거의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바다를 찾아 그 수평선을 만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저 동해, 서해, 남해 그리고 제주도 바다가 다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보니 제가 매해 가닿았던 바다들 가운데 전북의 바다를 빠트렸다는 점을 이제야 알고야 말았습니다. 군산에서 탁트인 새만금 방파제 신작로를 따라서 고군산도 섬들을 지나 변산반도 해변도로로 이어지는 30번 국도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가운데 하나일뿐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 서해안을 따라 절경을 과시하는 1번 도로 못지 않은 우리 강산의 보석같이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북의 바다는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던 충남 무창포를 지나 군산에서 시작합니다. 끝없는 새만금 방파제 도로를 지나 명사십리 선유도와 서해 낙조로 유명한 장자도를 건너서 변산해수욕장에 이르는 전북의 해안은 충남의 서해와 달리 산을 끼고 바닷가로 펼쳐져 있어서 산과 바다를 함께 만끽할 수 있으며 동해처럼 해변이 가파르지 않고 물이 차지도 더럽지도 않은데다가 파도도 거세지 않아서 물놀이하기에는 딱 안성마춤이었습니다. 주변에 작은 산들이 있고 적벽강과 채석강과 같은 파도가 깍아내린 주상절리들이 있어 경관도 다채로왔습니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변산해변로 277에 위치한 cafe909

변산해수욕장을 지나 하섬이란 곳에 이르면 해안절벽에 카페 909라는 전망좋은 커피숍이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격포항을 지나 30번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엇그제 우리 국민이 올 여름 제일 가고싶은 휴양지로 선정한 ‘국립변산자연휴양림’ 바로 직전에 ‘샹그릴라’라는 펜션이 변산해안도로 우측 해변가에 살포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휴양림이 화요일 휴무여서 휴양림 바로 옆에 위치한 해안가 펜션을 우연히 찾게되었지요.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변산로 3374 샹그릴라 펜션 전경. 이 사진은 펜션에서 보내준 사진입니다.

아,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며, 파도가 잔잔히 부러지는 바닷가를 거닐며 정호승 시인이 노래한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라는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바로 여기가 언제나 내가 찾아갈 수 있는 나만의 바닷가가 되리라 생각하며 멀리 희미하게 바라보이는 위도 넘어 펼쳐있는 수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샹그릴라 마음 속의 해와 달을 찾아서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걸어라 당신의 두 발을 믿어라”

‘샹그릴라’는 원래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1933년에 펴낸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이란 소설에서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이상향으로 창안해 낸 도시 이름이었지요. 펜션 주인이 펜션 이름을 ‘샹그릴라’라고 지은 연유를 이제야 조금 알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금 깊은 산맥의 샹그릴라가 아니라, 드넓은 바다의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져있는 바다의 ‘샹그릴라’에 와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푸른 바닷물이 하늘 바다로 스며들고” -허난설헌

변산 샹그릴라에서 푹 쉬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조간 신문을 보니 코로나를 피해서 올여름휴가를 보낼 숙소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곳이 공교롭게 전라북도 변산에 위치한 ‘국립변산자연휴양림’에 있는 ‘위도항’ (숲속의 집)이였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19498

위도항 객실 131대 1

휴양림 예약 경쟁률 전국 1위, 야영은 화천 18번 오토 캠핑장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지친 심신을 한적한 자연에서 달래려는 수요가 늘면서 자연휴양림 예약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10일 산림청

n.news.naver.com

이 객실은 전국 국립 휴양림 가운데 131대 1로 최고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 ‘위도항’ 객실은 서해바다와 아름다운 숲이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이 변산의 “자기만의 바닷가”에서 “비단옷 같은 노을”을 바라보며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객실에 들어가 베란다에서 눈앞에 펼쳐진 자그마한 해안가를 바라보니 내리쬐는 햇볕이 만든 그늘이 동그라미를 그려 자신을 표시하고 물이 찬 해변에 두 수목장승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고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 이름모를 사진사께서 이른바 ‘장노출(long take)’ 촬영기법으로 물 속에서 올라온 장승과 바다의 푸른 색깔을 프레임에 담기 위해서 사진기 삼각대를 배치해 둔 것을 발견하였지요. 아니나다를까 잠시 뒤에 이 삼각대의 주인께서 나타나 뭔가 작업을 하시며 장노출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지요.

펜션 숙소에서 보이는 나만의 바닷가 풍경

언제나 바다를 보면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대학시절에 배운 19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이란 영국시인이 쓴 “율리시즈(Ulysses)란 장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 젊은 날에는 이 시가 청년들에게 영원시 지지않는 태양, 대영제국의 야망을 품게하려는 테니슨의 선동시처럼 읽혀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세월이 지난 이 시를 계속 읽어보니, 이 시는 새로 시작하는 모험에 찬 청년들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오랫동안 몸담아온 생업을 그만두고, 이제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하려는 은퇴한 사람들을 위한 노래임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을 몰랐었습니다. 그리스의 호머(Homer)의 장대한 서사시 <율리시즈>에서 착안한 테니슨의 시, ‘율리시즈’는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고국에 돌아온 율리시즈 왕이, 세월이 지나 나이도 먹고 몸도 예전과 같지 않지만 또 다시 모험을 시작하는, 지칠줄 모르는 인간의 모습을 시로 읊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테니슨의 시, “율리시즈”는 호머의 오딧세이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이제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옆에서 좀 더 편한 생활을 즐기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을텐데, 이 시에서 율리시즈는 생이 다하는 날까지 모험/탐험의 여행을 쉬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오라, 나의 친구들이여.
새로운 세계를 찾기에 너무 늦지는 않았노라.
배를 밀어내라, 줄지어 앉아서
철썩거리는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자.
나의 목표는 죽을 때까지 해지는 곳을 너머,
모든 서쪽 별들이 물에 잠기는 곳을 너머 항해해 나가는 것이노라.
어쩌면 심해(深海)들이 우리를 삼킬지도 모르지.
어쩌면 우리가 “행복의 섬”에 다다라서
우리가 아는 위대한 아킬레스를 만나 보게 될지도 모르지.
비록 잃은 것 많지만 아직 남은 것도 많도다,
그리고 이제는 비록 지난날 하늘과 땅을 움직였던 힘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우리로다. 한결같이 변함 없는 영웅적 기백(氣魄),
세월과 운명에 의해 쇠약해졌지만, 의지는 강하도다,
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결코 굴하지 않으리니.
Come, my friends.
‘Tis not too late to seek a newer world.
Push off, and sitting well in order smite
the sounding furrows; for my purpose holds
To sail beyond the sunset, and the baths
Of all the western stars, until I die.
It may be that the gulfs will wash us down;
It may be that we shall touch the Happy Isles,
And see the great Achilles, whom we knew.
Though much is taken, much abides; and though
We are not now that strength which in old days
Moved earth and heaven, that which we are, we are—
One equal temper of heroic hearts,
Made weak by time and fate, but strong in will
To strive, to seek, to find, and not to yield.”
-테니슨 ‘율리시즈’ 가운데

그렇습니다. 테니슨은 세월의 파도는 물론이고 코로나로 상처입은 우리 모두를 위하다시 시작할 것을 강한 의지로 말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세월과 운명에 의해 쇠약해졌지만,/ 의지는 강하도다/ 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결코 굴하지 않으리니.”

19세기 영국의 바다에 테니슨이 있었다면, 20세기 조선의 변산 격포 앞바다에는 미당 서정주가 있었습니다. 전북 고창이 고향인 미당 서정주 선생은 청년 시절 육지의 길이 끝나는 격포 앞바다에 와서 푸른 바다를 마주하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귀기우려도 있는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우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아- 반딪불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우름에 젖은 얼굴을 온전한 어둠속에 숨기어가지고……너는,
무언의 해심에 홀로 타오르는
한낫 꽃 같은 심장으로 침몰하라.

아- 스스로히 푸르른 정열에 넘처
둥그란 하눌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의 깊이 우에
네구멍 뚤린 피리를 불고…… 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모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게집을 잊어버려,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

오- 어지러운 심장의 무게우에 풀닢처럼 흣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뜨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밤과 피에젖은 국토가 있다.

아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푸리카로 가라!”
-서정주, ‘바다’

미당 서정주(1915-2000)

1938년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쓰여진 이 시는 4.19 학생 혁명 때 젊은이들 사이에 많이 애송되었다고 합니다. 미당은 절망과 좌절로 혼란스러운 식민지 시대에 청년들에게 희망을 버리지말고 새로운 세계로 향한 도전과 모험을 하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민지배와 분단의 아픔 그리고 독재정권을 이겨내고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선진화의 길을 가고 있는 이 시대의 우리 모두에게 미당의 ‘바다’는 성난 파도소리 처럼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미당의 이 시는 코로나로 의기소침해 있는 우리 시대의 잃어버린 세대들에게도 큰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는 이렇게 힘주어 말합니다. “오- 어지러운 심장의 무게우에/ 풀닢처럼 흣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뜨라…… /청년아,”라고 말입니다.

코로나에 지쳐 변산의 푸른 산과 바다에서 심신을 위무하기 위해 국립변산자연휴양림 ‘위도항’ 객실을 신청하신 우리 모든 젊은이들을 위해서 한국의 샹그릴라에서 바라본 변산의 푸른 앞바다와 저녁 노을을 프레임에 정성껏 담아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푸르른 정열에 넘처
둥그란 하눌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정호승, ‘바닷가에 대하여’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파란 색이 진하게 보이는 이 사진들은 실내에서 차광코팅이 된 창문을 통해서 아이폰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당신 너무 보고 싶어
만리포 가다가
서해대교 위
홍시 속살 같은
저 노을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바알갛게 젖 물리고
옷 벗는 것
보았습니다.
-고두현 ‘만리포 사랑’

해 질 무렵 가장 빛나는 10분!

이상 사진들은 2021.6.8 변산 샹그릴라 펜션 앞바다를 아이폰 카메라에 담은 것입니다.

해는 온종일 스스로의 열로
온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여 놓고
스스로 그 속으로 스스로를 묻어간다

아, 외롭다는 건
노을처럼 황홀한 게 아닌가.”
-조병화, ‘노을’

이 사진은 변산 ‘샹그릴라’ 펜션 사장님께서 ‘장노출’ 기법으로 담은 펜션 앞바다 노을 풍경입니다.

“올 여름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고독 속으로…회복을 위하여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

https://youtube.com/watch?v=yPGXbzSVwa8&feature=share


https://youtube.com/watch?v=tZN2JcR_9b4&feature=sh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