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 가을이 더 아름다운 것 같구나”: 새이령 가는 길에 핀 들꽃시詩

눈이 부시게 푸르른 어느 초가을날, 코로나와 태풍으로 너무나도 청명해지고 인적드문 설악산을 다녀왔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설악을 다녀왔지만, 지금처럼 맑고 깨끗하며 고요한 설악은 처음이었습니다. 세상이 너무 혼탁하고, 언어가 너무 오염된 까닭일까요? 설악의 맑고 깨끗함이 마음을 순결하게 씻어주는 듯 나름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산행의 목표는 속초에서 인제 용대리로 넘어가는 새이령(샛령)이었습니다.

새이령은 조선시대 상인들이 영동과 영서를 오가며 교류한 조선의 실크로드였습니다. 새이령길은 상인들의 편리한 이동을 위해 계곡을 따라 높이 솟은 나무들 사이로 열린 다양한 풍경의 인적드문 오솔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용대리에서 마장터를 지나 새이령으로 가는 길은 ‘인제천리길’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이 길을 따라 심산유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숲속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북설악의 비밀의 정원”이라는 ‘마장터’를 만나게 됩니다. 마장터는 새이령길로 가는 길 중간지대 넓은 계곡천변 넓은 개활지에 마련된 거래장터였습니다. 강원도의 화개장터라고나 할까요.



마장터로 가는 길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와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를 연결하는 샛길입니다. 마장터 길은 용대리 미시령과 진부령 갈림길에서 미시령 쪽으로 1.5km쯤 가다 보면 박달나무 쉼터 간판이 있는 곳부터 시작됩니다. 마장터는 70년대 진부령과 미시령이 없었던 시절에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무역 통로(실크로드)의 중간지점에서 거래가 성사된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장터까지 걸어가는 길은 작은 돌길과 계곡으로 이어진 부분이 있었지만 작은 샛령을 넘어서 마장터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통신에 두절되는 깊은 원시림과 맑은 물 그리고 이름모를 들꽃으로 가득한 정원이있습니다.



지금은 70세 전후의 두 어르신이 형님, 동생하며 기거하시는 작은 산채 하나와 2개의 작은 정자가 커다란 계곡 옆에 자연의 정원을 만들며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산행은 목표했던 새이령을 눈앞에 두고 북설악의 비밀 정원, 새이령 마장터 원시림 계곡에서 풍경에 발목이 잡혀 그곳에 하염없이 머물다 새이령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어둡기 전에 돌아나오고 말았습니다.


“자연에 살다보면 고독과 외로움 같은 것들은 더러버 버리는 것이다. 꽃, 새, 풀잎, 바람, 물소리 이 모든 자연만물이 친구이기 때문이다.”
-마장터 백순혁 도사

마장터에는 계곡물을 따라 한국판 월을 연상시키는 아담한 산채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새이령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을 하려던 참에 이곳에서 자급자족하시며 은둔생활을 하고 계신 자연철학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선생같은 숲속의 은둔처사 ‘백순혁’ 선생을 만난 행운을 가졌습니다. 자연의 산물로 만들어진 그늘진 정다에서 계곡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도사께서 친히 빚은 막걸리와 함께 정담을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와 막걸리와 그리고 픙경에 취해 여기가 무릉도원이구나 하며 눌러 앉은 셈이죠.
대화중에 백순혁 선생은 “인간이 자연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길 때 자연은 고유한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다. 인간의 탐욕과 상업주의는 결국 자연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인간을 고독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마치 미국의 자연 철학자 소로처럼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이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하시며, 그렇게 할 때만이 인간은 비로소 도시인들이 겪는 고독과 외로움과 같은 정서로부터 자유롭게 된다고 말하시더군요. 요즘처럼 세상의 언어가 혼탁한 시대에 고독하고 외로운 영혼들에게 자연의 언어가 절실한 것 같습니다.


마장터 산채 앞뜰에서 그가 조로 직접 빚은 막걸리를 마시며 그의 자연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철학에 빠져들고 있는데 눈앞에 각종 이름모를 들꽃들이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나태주 시인이 들꽃들은 “이름을 알고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는 시가 떠올라 주변에 피어있는 꽃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숨어있던 꽃들이 숲속 여기저기서 얼굴 내밀며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지요. 이 이름모를 꽃들이 이 가을 이렇게 아름답게 하고 있다는 것들은. 그 모습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산하는 길에 오를 때 보지못한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피어난 가을 들꽃들로 인해 가을 산행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코로나에 지친 이 가을 여러분께 그 이름모를 아름다운 꽃들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별빛처럼 아름다운 언어의 꽃, 시詩와 함께말입니다.
법정스님의 그 해맑은 언어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들꽃은 그 꽃이 저절로 자라는 그 장소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꽃만 달랑 서 있다면 무슨 아름다움이겠는가. 덤불 속에 섞여서 피어 있을 때 그 꽃이 지닌 아름다움과 품격이 막힘없이 드러난다.”
“꽃향기는 코로 맡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聞香)고 하는 옛 표현이 훨씬 운치있고 적절하다. 냄새는 맡고 향기는 듣는다. 바람결에 은은히 묻어오는 그 향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차겁지만
그렇게 차겁지는 않게,
뜨겁지만
그렇게 또 뜨겁지도 않게,
가을꽃들이 피어난다.”
박성룡 -가을꽃-


“네가 있어
가을이 더 아름다운 것 같구나
연분홍빛으로 하늘거리는
너 때문에
가을이 화려하고 아름답단다
물결치는 듯이
휘청거리는 네 자태
나약한 듯이 보이면서도
굳게 서서
멋진 가을을 수놓은구나”
김덕성 -코스모스 연정-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
이해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 들꽃 1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그 꽃-




“마른 풀향기 그윽한 어느 가을날
홀로 찬바람 불어오는 산자락 따라
더욱 따사로운 미소로 피고지는 가을꽃
그 기품 그 기개 매력 좇아
찬이슬 훑어가며 한번 더 보고픈
거친 비바람 된서리 조차 물리쳐버린
당당하게시리 겸손 잃지 않은 채 피어나는 꽃
눈에 잘 띄는 화려한 뜨락피해
스스로 외롭게 피어난 쓸쓸한 삶
그저 소신껏 피고 지는 청결 고아한 기상
때 되면 이낌없이 스러져버릴 줄 아는 지혜
가을볕 서늘바람 속에섣 그 향길 내뿜는
엷은 고통속에서도 풍기려드는 가을꽃
몸가짐이
그날따라 너무나 신선하고 감동스럽기조차
하였다.”
손병흥 -가을꽃-





“이름을 알고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 들꽃 2 ♣
나태주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다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 -가을엽서-



“기죽지 말고 살아 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 들꽃 3 ♣
나태주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
정호승 -가을꽃-





꽃집에서
가을을 팔고 있습니다
가을 연인같은 갈대와
마른 나무가지
그리고 가을 꽃들
가을이 다 모여 있습니다 ......”
용혜원 -가을을 파는 꽃집-




“삶은 항상 향기있는 꽃이어야 한다 “
-법정스님
사람은 묵은 데
갇혀 있으면 안 된다.
꽃처럼 늘 새롭게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꽃이라면
어제 핀 꽃하고 오늘 핀 꽃은 다르다.
새로운 향기와
새로운 빛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자기가 살던 집을
훌쩍 나오라는 소리가 아니다.
낡은 생각에서,
낡은 생활 습관에서
떨치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눌러앉아서
세상 흐름대로 따르다 보면
자기 빛깔도 없어지고
자기 삶도 없어진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자기답게 거듭거듭
시작하며 사는 일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밖에서 오는 행복도 있겠지만
안에서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
하루 한 순간만이라도
순수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서정주 -푸르른 날-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이 시는 윤동주의 시라고 회자되고 있지만 확인할 수 없는 작자미상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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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xXBNlApwh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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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UQlFOX0YKlQ&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