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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숲으로 들어가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다”: ‘신록예찬’

고독서원 2021. 5. 6. 08:58

“푸른 숲의 뻐꾹새 소리가
시혼(詩魂)을
흔들어 깨우는 5월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신록의 숲으로 들어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만나고 싶다”
-이해인, ‘5월’에서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입니다. 특별히 오늘 (5월 5일)은 비가 온 다음 날이라 그런지 “더할 나위없이 맑고” 구름 한 점 없이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이었습니다.

오늘같은 날에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배운 이양하 선생님의 ‘신록예찬’이 저절로 읊조려집니다. 특별히 이 구절이 생각나네요.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나의 가슴을 씻고,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어린이날 어린이가 없는 집에서 책을 읽다 화초를 가꾸며 소일하고 있는데 창밖 하늘이 너무 푸르고 곱고, 뒷산 초록이 너무 청량해보여 그 신록에 마음을 씻으러 간편한 등산복 차림으로 오후 3시경 집을 나서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뒤에 문형산이란 작은 산자락의 ‘깃대봉’이 있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을 나서 봉우리까지 올랐다 다시 돌아오는데 넉넉히 2시간 가량의 딱 알맞은 등산 코스입니다. 깃대봉 정상의 정자까지 오르는 데 2개의 쉼터가 있습니다. 첫번째 운동하는 쉼터까지가 제법 가파른 난 코스로 온 몸에 땀이 날 정도이며, 이곳을 지나 두번째 전망 좋은 쉼터를 지나 깃대봉꺄지는 능선을 타고 평지에 가까운 산책로가 펼쳐집니다.

숲속으로 들어오니 문득 이해인 수녀님의 ‘5월’이란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푸른 숲의 뻐꾹새 소리가 / 시혼(詩魂)을 흔들어 깨우는 5월 /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 신록의 숲으로 들어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 나를 만나고 싶다.” 그렇습니다. ‘시혼’은 차마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저 내 마음을 씻고 나 자신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숲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나무의 울창함과 녹빛에 따라 숲의 모습은 신비롭게도 순간 순간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초록에 반해 숲만 쳐다보다가 나뭇잎 사이로 파아란 하늘빛이 눈 부시게 들어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코발트빛 하늘이 섬처럼 출렁이는 숲의 바다에서 떠 있었습니다.

잘 생긴 소나무가 가운데 자리한 첫번째 쉼터를 지나 숲길 사이로 보이는 파아란 하늘을 쫓아 멀리 문형산 정상이 보이는 전망좋은 쉼터에 도착하니 탁 트인 파랑 하늘에 녹빛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신록예찬’에서 이양하 선생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나의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라고 하셨는지 새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나의 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眼前에도 신록이다”
-이양하, ‘신록예찬’에서

이양하(1904~ 1963), 수필가, 영문학자 평안도 출생. 평양고, 동경대 영문과 졸업 후 연세대 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를 역임하였지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하셨으며, 금아 피천득(皮千得)등과 함께 영국의 찰스 램(Lamb)과 베이컨(Bacon,F.) 등 서구의 정통 수필을 도입, 우리 문학의 수필 장르를 개척하셨습니다. 이양하 선생님의 수필은 종래의 신변잡기적·주관적 제재에서 벗어나 생활인의 철학과 사색이 담긴 본격 수필을 시도하였으며, 특히 <나무>1964) 등의 작품은 우리 수필문학사상 주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이지요. 동시에 영문학자로서 신비평을 개척한 리처즈(Richards I.A.)의 『시와 과학』(1947)을 번역하여 이 땅에 리처즈의 문학 이론을 최초로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양하 선생님께서는 신록을 다음과 같이 예찬하십니다.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이러한 때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스럽고,
또 이러한 때 나에게는 아무런 감각의 혼란도 없고, 심정의 고갈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의 유열(愉悅)과 평화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또, 이러한 때에 비로소 나는 모든 오욕과 모든 우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나의 마음의 모든 상극과 갈등을 극복하고 고양하여,
조화 있고 질서 있는 세계에까지 높인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양하, 신록예찬’

그러시면서 선생님께서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 무궁무진하지만”

“그 중에서 봄과 여름이 혜택이 많고 그 가운데서도 봄, 봄 가운데에서도 만산(萬山)에 녹음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이양하 ‘신록예찬’

라고 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警異)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신록예찬’

마음의 치유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숲속에서 신록과 함께 고독한 산책을 즐기시면서도 인간다움을 잊지 않으시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말하십니다. 고독은 더 건강한 관계를 준비하고 지향하는 것이며,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발고여락(拔苦與樂)’의 길로 가야한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나는 역시 사람 사이에 처하기를 즐거워하고,
사람이란.....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양하, 신록예찬’

그러나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는 이 때,”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 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말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는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흔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
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이양하, 신록예찬’
https://youtube.com/watch?v=uNi_0Jkchmk&feature=share

그러기에 초록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淸濁)이 없다.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 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시대.
......
이 시대는 신록에 있어서 불행히 짧다.
......
그러나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할 것이다.
......
그의 청신한 姿色,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한 香薰,
참으로 놀랄 만한 자연의 극치의 하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를 드릴 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이양하, ‘신록예찬’


이렇게 ‘신록예찬’을 떠올리며 진하고 여린 초록의 “청탁”에 상관없이 청록에 물씬 취해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나무와 하늘만 보며 오르던 길섶에서 미처 보지 못한 이름모를 초록 풀잎과 들꽃들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산에서 내려와 아파트에 이르는 포장도로 틈새에서도 꽃은 아름답게 피어있었습니다.

한송이 꽃과 같은 이해인 수녀님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이해인 수녀님께서 “신록의 숲으로 들어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만나”라고 하신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숲속에서 찾고자 했던 잃어버린 나를 과연 만났는가? 생각을 해보니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에 신록과 청천 그리고 야생화에 마음을 빼앗겨 아무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작 자신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내팽개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곁눈질하는 즐거움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아무 “생각 없는 내”가 바로 ‘잃어버린 자아’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게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때로 무념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은 숲속에서 고독하게 혼자 걸어갈 때 모든 잡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으로서의 신록이고 이 신록의 숲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무념무상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무념무상의 무아지경이 그 동안 세속에서 살면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은 아닐까요.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신록예찬’에서

이양하 선생님은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고 말하시면서

우리 사람이란 ― 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 칠정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마음에 영일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 비소하고 어떻게 저속한 것인지. 결국은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를 깨뜨리는 한 오점 또는 한 잡음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될 수 있으면 이러한 때를 타서, 잠깐 동안이나마 사람을 떠나, 사람의 일을 잊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한가지로 숨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
-이양하 ‘신록예찬’

라고 말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띠끌 ― 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볕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주객일체(主客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라 할까, 현요(眩耀)하다 할까.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장무애(無障無礙),”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때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스럽고, 또 이러한 때 나에게는 아무런 감각의 혼란도 없고, 심정의 고갈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의 유열과 평화가 있을 따름이다.”라고 자족의 기쁨을 나누십니다. 이것은 바로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 신록의 숲으로 들어가 / 그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만나고 싶다.”고 노래한 이해인 수녀님의 시혼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맑고 푸르른 날에는 신록의 숲으로 들어가 보시는게 어떠실런지요. 좀 외로우시다면 리처드 클라이더만의 ‘야생화’를 들으시면서 말입니다.

https://youtube.com/watch?v=V145ABTTwcE&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