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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다니키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

고독서원 2021. 2. 25. 15:56
다니카와 슌타로, 1931년 도쿄 생. 1950년, [문학계文學界]에 시를 발표. 1952년, 시집 [20억 광년의 고독]을 출간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1952년에 “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나는 화성에게 말 걸고 싶어진다 ....... 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화성의 붉은색이 따뜻한 것이다”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광활한 우주에 대한 서정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시인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가 '세계의 약속'과 '우주소년 아톰'의 주제가를 작사했다. 2014년 1월부터 6개월간 한국의 시인 신경림(80)과 시로 “지금은 시로 위로할 때”라며 이야기를 나눴다. 신경림 시인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침통한 심정을 담은 시를 일본으로 보냈다. “남쪽 바다에서 들려오는 비통한 소식/몇 백 명 아이들이 깊은 물 속/배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는/온 나라가 눈물과 눈노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도 나는/고작 떨어져 깔린 꽃잎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라고 시룰 보냈다. 그러자 다니카와 시인도 일본에서 시를 통해서 슬픔을 나눴다. “숨 쉴 식(息) 자는 스스로 자(自) 자와 마음 심(心) 자/일본어 ‘이키(息·숨)’는 ‘이키루(生きる·살다)’와 같은 음/소리 내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상상력으로조차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괴로움/시 쓸 여지도 없다”고 시로 소통한 바 있다.


지구가 코로나와 이상 한파로 끙끙 앓던 2012년 2월에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은 두 가지 사건이 현실과 허구의 세계에서 일어났다. 하나는 미국의 화성 탐사선 로버, '퍼시비어런스(Perseverance;불굴의 인내)'가 지난 18일(현지시간)에 지구에서 5억 km나 멀리 떨어져 있는 화성에 착륙한 것이다. 우주선 이름 ‘퍼시비어런스(불굴의 인내)’처럼 최대 난관으로 여겨진 '공포의 7분'을 뚫고 붉은 행성에 도착하는 우주 탐사를 향한 위대한 인간 승리를 마침내 해내고 말았다.

“인류를 화성으로”: 미국 나사 ‘퍼시비어런스’ 6개월 반 4억7천만km 비행후 착륙 직전의 모습

다른 하나는 코로나로 인해 극장 개봉을 미루어오다가 2월에 넷플릭스로 전격 개봉한 한국 최초의 우주SF영화 <승리호>이다. 그 동안 <늑대 소년> <탐정 홍길동> 등의 장르 영화를 선보였던 조성희 감독이 제작한 <승리호>는 인류를 화성으로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첫단추인 무인 우주선 퍼시비어런스의 화성 착륙과 때를 같이 하여 몇가지 작품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급기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할리우드에서 본격 새롭게 제작하기로 결정했다는 낭보까지 들려온다.

지난 2월 5일 넷플릭스로 전세계에 개봉된 조성희 감독의 최초의 한국형 우주 SF 영화 <승리호>

그 동안 인간의 우주에 대한 상상력은 SF 문학 작품과 함께 할리우드 우주 영화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어린 시절 아폴로 11호의 기억을 선명하게 갖고 있던 우리 세대는 성장과정에서 <화성 연대기>를 비롯해서 <스타 워즈>와 <스타 트랙> 시리즈로 우주의 상상력을 키워왔다. 2010년에 접어들어서는 <그래비티 Gravity>(2013), <인터스텔라Interstellla>(2014), <마션 Martian>(2015) 등의 놀라운 우주영화들을 통해서 보다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우주 영화가 소개된 바 있다.


코로나와 기후변화로 전지구가 위협을 받고 있었던 2020년에는 지구의 멸망을 전제로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우주피난 영화들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 주목할 만한 영화는 2020년 개봉한 조지 클루니 주연의 <미드나잇 스카이 Midnight Sky>가 있다. 온난화로 지구가 멸망하자 인류는 지구 밖에서 도피처를 찾으려 떠나고, 최후의 인간(조지 클루니)은 우주의 새로운 개척지를 발견하고 지구로 귀환하려는 우주인들에게 지구가 멸망하고 있으니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을 찾아 인류를 존속시키라고 말하며 혼자 지구에 남아 고독한 죽음을 맞이한다.

지구를 떠나 대체 행성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승리호>의 플롯과 유사하다. 그러나, <승리호>의 우주 쓰레기 청소 아이디어는 아마도 <그래비티>에서 우주궤도를 떠도는 우주 쓰레기 재난에서 착안된 듯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우주적 상상력은 일찍이 일본의 국민시인 다니카와 슌타로 옹이 <이십억 광년의 고독>이한 시집에서 한편의 서정시로 위기에 처한 지구의 인류가 우주에서 대체 행성을 찾으려는 욕망을 백지 위에 다음과 같이 동화 속의 어린왕자 처럼 그려놓았다.

“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나는 화성에게 말 걸고 싶어진다
.......
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화성의 붉은색이 따뜻한 것이다.”

2차대전에서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일본에서 21세기 인간의 우주적 상상력을 이렇듯 쉽고 명료하게 한 문장으로 옮겨 놓았다니 그저 그의 원대하고 투명한 우주적 동심이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2021년 2월 인류는 거짓말 같이 화성에게 말을 거는 데 성공한 것이다.인류의 위대한 승리 앞에서 노시인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바로 이 시인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우주소년 아톰>의 주제가를 작사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인 슌타로의 노래처럼 예측을 불허하는 팬데믹의 창궐과 기후변화에 무기력하고, 지친 우리들도 ‘지구가 너무 사나운 날’에는 ‘이십억 광년의 고독’의 힘으로 “화성에게 말을 걸고 싶어”져 버리는 것이다. 지구가 너무 춥고 사나워져서 마음이 따듯해 보이는 붉은 빛 화성에 가닿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일하며 때로는 화성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시란 “아이들이 읽으면 동요가 되고, 젊은이들이 읽으면 철학이 되고, 늙은이가 읽으면 인생이 되는 그런 시가 좋은 시”라는 괴테의 말을 쉽고 평이한 언어로 실천함으로써 사랑과 화해를 노래한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


인류는 작은 공(球) 위에
자고 일어나고 그리고 일어나
때로는 화성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화성인은 작은 공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
(혹은 네리리 하고 키르르 하고 하라라 하고 있는지)
그러나 때때로 지구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것은 확실한 것이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우주는 점점 팽창해간다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다니키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네리리 하고 키르르 하고 하라라”은 시인이 상상한 우주 언어.]

그렇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바로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 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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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타로 옹은 2014년 세월호로 우리나라 전국민이 슬픔에 빠졌을 때, 누구를 탓하고 배척하기 보다는 “지금은 시의 언어로 서로를 위로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신경림 시인과 시를 통해 소통하며 서로의 국민들을 위로했다는 점에서 고개가 숙여진다. 그는 시를 통해 위로를 넘어서 서로를 끌어당기려 했던 것이리라. 그의 ‘사랑’이라는 시를 통해서 작금의 한일관계를 되씹어본다.

 

‘지금은, 시의 언어로 서로를 위로할 때’

 

사랑-파울 클레에게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언제까지라도
엮여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라도
그렇게 어디까지라도 엮여 있는 것이다
약한 자를 위하여
서로 사랑하면서도 헤어져 있는 것
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위하여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언제까지라도 끝나지 않는 노래가 필요한 거다
하늘과 땅이 싸우지 않도록
끊어졌던 것을 본래의 이어진 관계로 돌리기 위해
.......
노래가 또 하나의 노래와
다투는 일이 없도록”

다니카와 슌타로의 ‘사랑_ 파울 클레에게’ 중에서

https://youtube.com/watch?v=6lmgWzrGwf4&feature=share


https://youtube.com/watch?v=L6svOHFSAH8&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