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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칠월 칠석날 밤입니다.”: 만해 한용운의 고적한 홀로움

고독서원 2021. 8. 14. 18:20
백담사 만해 한용운 기념관의 만해 초상

산중은 차고 해도 기우는데
아득한 이 생각 누구와 함께 하랴
잠시 이상하게 우는 새 있어서
한암고목寒巖枯木까지는 안 되고 마네

-만해 한용운 ‘홀로 읊다獨唫’-

‘칠석’

「차라리 님이 없이 스스로 님이 되고 살지언정,
하늘 위의 직녀성은 되지 않겠어요, 네 네.」
나는 언제인지 님의 눈을 쳐다보며
조금 아양스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견우의 님을 그리우는 직녀가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는 칠석을 어찌 기다리나 하는,
동정의 저주였습니다.
이 말에 나는 모란꽃에 취한 나비처럼,
일생을 님의 키스에 바쁘게 지나겠다는,
교만한 맹서가 숨어 있습니다
아아 알 수 없는 것은 운명이요,
지키기 어려운 것은 맹서입니다.
나의 머리가 당신의 팔 위에 도리질을 한 지가,
칠석을 열 번이나 지나고 또 몇 번을 지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용서하고 불쌍히 여길 뿐이요,
무슨 복수적 저주를 아니 하였습니다.
그들은 밤마다 밤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 건너다보며 이야기하고 놉니다.
그들은 해쭉해쭉 웃는 은하수의 강안(江岸)에서,
물을 한 줌씩 쥐어서 서로 던지고 다시 뉘우쳐 합니다.
그들은 물에다 발을 잠그고 반비식이 누워서,
서로 안 보는 체하고 무슨 노래를 부릅니다.
그들은 갈잎으로 배를 만들고, 그 배에다
무슨 글을 써서 물에 띄우고 입김으로
불어서 서로 보냅니다.
그리고 서로 글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잠자코 있습니다.
그들은 돌아갈 때에는 서로 보고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아니 합니다
지금은 칠월 칠석날 밤입니다.
그들은 난초실로 주름을 접은
연꽃의 웃옷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한 구슬에 일곱 빛 나는
계수나무 열매의 노리개를 찼습니다.
키스의 술에 취할 것을 상상하는
그들의 뺨은, 먼저 기쁨을 못 이기는 자기의
열정에 취하여 반이나 붉었습니다.
그들은 오작교(烏鵲橋)를 건너갈 때에,
걸음을 멈추고 웃옷의 뒷자락을 검사합니다.
그들은 오작교를 건너서 서로 포옹하는 동안에,
눈물과 웃음이 순서를 잃더니,
다시금 공경하는 얼굴을 보입니다.
아아 알 수 없는 것은 운명이요,
지키기 어려운 것은 맹서입니다.
나는 그들의 사랑이 표현인 것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나의 사랑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의 신성(神聖)은 표현에 있지 않고
비밀에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하늘로 오라고 손짓을 한대도,
나는 가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칠월 칠석날 밤입니다.

-만해 한용운 ‘칠석’ <님의 침묵>

음력으로 7월 7일 밤은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가 만들어준 오작교에서 만나는 ‘낭만’ 칠석(七夕)입니다. 견우와 직녀 설화의 발생 시기는 불확실하나 은하수가 발견된 춘추전국시대를 중점으로 견우와 직녀 두 별이 인격화되어 설화로 꾸몄졌다고 봅니다. 직녀성은 은하의 서쪽에 위치해있고 견우성은 은하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보니 별의 위치상으로도 이 전설이 성립되는 거죠. 실제로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두 별이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그 위치가 매우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베를 짜는 솜씨가 좋았던 직녀는 소를 몰고 다니는 견우와 사랑에 빠지면서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매우 게을러져 이를 지켜보던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결국 1년에 1번, 칠석 전날 밤에 은하수를 건너야만 만날 수 있는 벌을 받게 되었지요. 그러나 은하수를 건널 수 없는 두 사람이 슬피 울자 땅에서 이를 지켜보던 까치와 까마귀가 날개를 펴서 다리를 놓아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낸 다리를 전설 속의 오작교라고 부르게 된것입니다.

칠석날 저녁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고 이튿날 새벽에 비가 오면 이는 다시 헤어져야 하는 이별의 눈물이라 하네요. 자연의 공감적 대응은 감동적입니다.

심지어 이 날이 지나면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가 진짜로 벗겨지는데 이러한 현상을 보고 견우와 직녀의 발에 밟혀 벗겨진 것이라고 한답니다. 동물들의 인간 사랑을 위한 희생이 눈물겹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인간의 사랑조차 자연만믈의 도움없이 불가능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과 자연만물이 상호의존해왔다는 ‘인물균’ 사상이 이 이야기 속에 숨어 있습니다.

최근 인간증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함을 주장하는 서양의 대표적 사상가 브뤼노 라투르의 ‘사유의 대전환’은 이미 동양의 설화에 담겨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은 칠월 칠석입니다. 아침부터 하늘이 흐리고 제주도에는 심지어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하니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에 감동한 하늘도 그들의 만남에 기뻐하고 곧 헤어짐을 슬퍼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차라리 님이 없이 스스로 님이 되고 살지언정, 하늘 위의 직녀성은 되지 않겠어요” 라고 노래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칠석’이란 시가 떠올랐습니다. 천상에서 “나를 하늘로 오라고 손짓을 한대도,나는 가지 않겠습니다.” “사랑의 신성(神聖)”보다는 “오작교를 건너서 서로 포옹하는” 인간의 세속적 사랑을 선택하겠다는 말이겠지요.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님의 침묵’ 가운데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 고로 자유가 무無한 인은 사해死骸와 동同하고 평화가 무無한 자는 최고통의 자라.” —만해 한용운, <조선독립의 서>가운데
파도치는 낙산사 의상대

엇그제 동해 먼바다 곁으로 태풍이 지난 뒤에 낙산 의상대에 부딪치는 성난 파도를 보러갔습니다. 미슐레가 <바다>에서 “파도가 바다의 맥박이자 경련”이란 말이 실감이 날 정도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내설악에 위치한 백담사에 계신 만해 한용운 선생을 찾아뵈었습니다.

좌측은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공동 창설자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공교롭게 백담사를 찾은 날은 25회 만해대상을 수상하는 날이었습니다. 올해 수상자 가운데 평화대상 수상자로 다니엘 바렌보임이 선정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대계 아르헨티나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바렌보임은 팔레스타인계 미국의 세계적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년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단을 창단하여 음악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 음악가입니다. 또한 바렌보임은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오펜바흐의 유명한 첼로곡의 주인공이자 영국이 낳은 비운의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머나먼 이국땅, 분열의 현장을 치유하기 위해 분투하는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들의 평화공존에 경의를 표한 것이야말로 만해 정신의 진정한 계승이자 실천이 아닌가 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공동창단자였던 에드워드 사이드가 바렌보임과 함께 공동수상했어야 했습니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충남 홍성 출신, 1896년 동학혁명에 참가한 뒤, 설악산 오세암에 은둔하다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 33인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3년간 옥고를 치루었습니다. 그는 안타깝게도 8.15 광복절을 1년 남기고 심우장에서 열반합니다. &lt;님의 침묵&gt;, &lt;조선독립의 서&gt; 그리고 &lt;조선불교유신론&gt;은 시인이자 지사, 그리고 선사로서의 범접할 수 없는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입니다. 그는 &lt;님의 침묵&gt;을 발표하기 2년 전인 1924년 &lt;죽음&gt;이란 장편소설을 탈고하였지만 미발표 유고로 남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화엄반야사상, 유신개혁사상, 민족사상, 자유와 평화사상, 대중불교사상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어찌 성공과 실패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겠는가. 사람에 의거하여 결정될 뿐이다. 모든 일이 어느 하나도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소위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것이니, 만약 사물이 자립하는 힘이 없고 사람에 의존할 뿐이라면 일에 성패가 있는 것도 결국은 사람의 책임일 뿐이다.” -한용운 &lt;조선불교유신론&gt;, ‘서문’ “&lt;조선불교유신론&gt;의 문장력으로는 근대에 그 짝이 없다.” -운양 김윤식 “7천 승려를 다 합하여도 만해 1인을 당하지 못한다. 만해 1인을 아는 것은 만인(萬人)을 아는 것보다 낫다” -벽초 홍명희- “인도에는 간디가 있고 조선에는 만해가 있다. 조선 청년들은 만해를 배우라” -위당 정인보-

각설하고, 다시 백담사 만해 선생을 뵈옵니다. 민족수난의 시대를 가로지르며 고난의 칼날에 올곧게 맞섰던 독립투사, 평생 조선의 꽃 논개만을 사랑했던 ‘님의 침묵’ 의 시인, 불교개혁을 위한 유신론를 주창한 개혁 선사, 만해 한용운 선생. 대학시절 백담사를 찾은 뒤, 참으로 오랜만에 백담사 만해 한용운 기념관에서 불멸의 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님을 칠월칠석 즈음에 새롭게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매월당 김시습의 시 ‘저물 무렵’ “천 봉우리 만 골짜기 그 너머로 외로운 구름 밑 새가 돌아오누나 올해에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해에는 어느 산을 향해서 갈거나 바람 자니 솔그림자도 창에 어리고 향은 스러져 스님의 방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버리니 내 발자취 물과 구름사이 남아있으리” 萬壑千峰外 孤雲獨鳥還 此年居是寺 來歲向何山 風息松窓靜 香銷禪室閑 此生吾已斷 棲迹水雲間 -김시습, ‘저물 무렵晩意’
백담사 이미지가 물과 연관된 것은 절의 이름에도 담겨 있다. ‘백담사(百潭寺)’는 화재를 피하기 위해 절 이름을 바꾸려는 주지 스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를 세어보라고 해서 다음 날 세어보니 100개여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백담사에는 만해의 시비외에도 조선 중기의 방랑시인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백담사는 독립운동을 했던 만해 한용운(1879~1944)스님의 출가지이며 1926년에는 이곳에서 <님의 침묵>을 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으로 내설악 백담사를 조선 선비들에게 알린 인물은 매월당 김시습(1435~1493)과 조선 중기의 유학자 삼연 김창흡(1653~1722)입니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분노하여 세상을 등진 생육신 매월당은 오세암에 머물렀으며, 삼연은 영시암을 창건해 그곳에 머물렀지요. 두 암자는 모두 백담사 산내 암자입니다.

영시암

영시암과 오세암을 지나면 대청봉에 오르는 마지막 관문 봉정암이 있지요.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설악산 유람을 할 때 가장 일반적인 행로는 백담사 - 오세암 - 신흥사 코스였다고 합니다. 대학시절 장수대-대승령-백담사-오세암-대청봉-신흥사에 이르는 설악산의 최난코스를 종주한 기억이 생생하네요.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 1917년 겨울 오세암에 오른 만해는 깨달음에 이르러 남아 대장부는 산천초목 만물이 부처가 아닌게 없고, 온 세상이 정토임을 깨달은 뒤, 오도송이란 다음 선사를 쓴다. “사나이가 이르는 곳 게가 바로 고향일세” (男兒到處是故鄕남아도처시고향). -한용운, ‘오도송’에서 이와같은 만해의 ‘남아도처시고향’의 인식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의 &lt;망명에 대한 성찰(Reflections in the Exile)에서 인용한 12세기 수도승 생빅토르 위고가 말한 다음과 같은 글과 맥을 같이 한다. “고향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미숙한 초보자이고세상을 모두 고향으로 여기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타향으로 보는 사람은 완벽하다.” 사이드는 그 책에서 진정한 지식인은 자신의 혈연, 고향, 모교, 국가 심지어 민족에게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만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지식인은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소멸시키으로써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25년 3.1운동으로 3년간 옥살이를 마치고 나오자 동지들이 하나씩 변절하고 배반하자, 스스로를 새롭게 다시 세우기 위해서1905년과 1917년 이후에 세번째로 오세암을 찾은 만해 선생은 매월 김시습 오세암 장경각에서 주해한 <십현담>(중국 동안상찰(?~961) 선사가 지은 ‘십현담’(十玄談)을 1475년 김시습이 알기 쉽게 풀이한 ‘십현담요해’)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만해가 1925년 오세암에 다시 들어가 1926년 매월당 김시습의 &lt;십현담주해&gt;를 새롭게 발행한 두달후에 &lt;님의 침묵&gt;을 출간합니다.

“매월이 지켰던 지조는 세상과 맞아들지 않아 홀로 떨어져 은둔해 때로는 원숭이 같고 학과 같이 하기도 했지만 끝내 당시대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영원히 자기를 깨끗이 했으니 그 뜻은 괴로웠고 그 정은 아팠었다. 또한 매월이 오세암에서 <십현담>을 주했으니 나 또한 오세암에서 읽은 것은 열경(매월)이 풀이해 놓은 <십현담>이다. 사람들을 접한 지 수백 년이 지난 뒤에도 그 느끼는 바는 오히려 새롭다. 이에 십현담을 주해한다.”

-한용운-


만해 한용운 선생은 고독한 영혼 매월당 김시습의 지조를 재음미하면서 매월이 오세암에서 주해한 <십현담>의 비평적 해석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해는 새로운 시인으로 거듭나는 영감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불멸의 시 <님의 침묵> 88편은 이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님의 침묵>이 위대한 것은 시들이 한민족의 서정주의의 정수를 표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월당의 지조를 생각하며 “새롭게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스스로 이해하여 스스로 새롭게 판단하도록 감성과 사유를 충전할 수 있”(윤재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람에 떨어지는 꽃 한송이의 소리를 모국어로 표현한 만해의 감성적 목소리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흔들어 빼는 님의 노랫가락에 찻잔 든 어린 잔나비의 애처로운 꿈이
꽃 떨어지는 소리에 깨었습니다.
죽은 밤을 지키는 외로운 등잔불의 구슬꽃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고요히 떨어집니다.
……
작은 새여, 바람에 흔들리는 약한 가지에서 잠자는 작은 새여.

-한용운 ‘?’ 가운데-


그러나 서정적인 88편의 아름다운 시보다는 이번 만해 선생과의 새로운 만남은 고독과 외로움을 노래한 ‘선시禪詩’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부터 암송해온한국적 서정성의 끝판왕 ‘님의 침묵’과 ‘알수없어요’ ‘나룻배와 행인’ 그리고 ‘복종’을 다시 읽은 것도 좋았지만, 서정시에 가려진 만해의 선시가 참으로 좋았습니다. 만해의 서정시들이 님을 노래한 ‘사랑의 시’라면, 그의 선시들은 ‘깨달음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비평가들은 만해의 서정시들은 그의 그림자에 불구하며, 그의 진면목은 선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만해는 <십현담주해>를 통해서 선사상를 심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체득된 그의 선사상은 ‘선시’를 통해서 발현됩니다. “선시는 형식적 언어나 논리적 사유를 거부하고, 파격적이고 역설적입니다.”(백원기)특히 그의 ‘선시’들은 “맑고 간결하고 소박하고 탈속 무애한 직관적 사유와 시적 영감으로 발아”되었습니다. 그의 선시들은 은유와 대위법 등의 표현을 통하여 미혹한 중생을 깨우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 구도와 깨달음의 순간의 절정을 노래합니다. 그럼, 고적한 홀로움을 노래한 만해의 선시 몇편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사천리 밖에서 홀로 애태우노라
가을 바람 불 적마다 흰머리 생겨……
낮잠을 놀라 깨니 사람 없고
뜰에 가득 비바람 소리 가을을 몰아오네.
四千里外獨傷情(사천리외독상정)
日日秋風白髮生(일일추풍백발생)
驚罷晝眠人不見(경파주면인부견)
滿庭風雨作秋聲(만정풍우작추성)

-한용운 ‘창가를 스치는 비바람獨窓風雨’-


삭풍은 긴긴밤을 끊임없이 불어오고,
나무사이로 울려오는 종소리 홀로 문을 닫는다.
청등은 눈 오는 소리에 더욱 차갑게 불빛 돋우고,
홍첩에 붙인 매화 문자 향을 더한다.
석자 거문고는 학으로 짝하고,
한 칸 명월은 구름과 벗한다.
우연히도 육조의 일 문득 생각나,
말하고자 고개 돌리니 그대는 이미 없다.

-한용운, ‘홀로 앉아서獨坐(독좌)’ -


일생에 기구한 일 많이 겪으니
이 심경은 천추(千秋)에 아마 같으리.
일편단심 안 가시니 밤달이 차고
흰머리 흩날릴 제 새벽 구름 스러짐을.
고국 강산 그 밖에 내가 섰는데
아, 봄은 이 천지에 오고 있는가.
기러기 비껴 날고 북두성 사라질 녘
눈서리 치는 변경 강물 흐름을 본다.
반평생 만나니 기구한 일들.
다시 북녘땅 끝까지 외로이 플러왔네.
차가운 방 안에서 비바람 걱정하느니
이 밤 새면 느는 가을이리라.

-한용운 ‘홀로 거닐며孤遊’-


밝은 달 하늘 가로 기울어지고
이 긴 밤 홀로 누워 듣는 솔 소리.
잠시도 동문(洞門) 밖을 안 나갔건만
산수(山水) 찾는 버릇은 그대로 남아 있네.
숲에 맺힌 이슬 달빛에 싸락눈 같고
물 건너 들려 오는 어느 집 다듬이 소리.
저 산들이야 하냥 저기 있으련만
매화꽃 필 적이면 고향 찾아 돌아가리.

-한용운 ‘홀로 있는 밤獨夜 二首’-


하늘에는 달이 없고 땅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소리가 없고 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잠인가요.

한 가닥은 눈썹에 걸치고, 한 가닥은 작은 별에
걸쳤던 님 생각의 금실은 살살살 걷힙니다.
한 손에는 황금의 칼을 들고 한 손으로 천국의
꽃을 꺾던 환상의 여왕도 그림자를 감추었습니다.
아아, 님 생각의 금실과 환상의 여왕이 두 손을 마주
잡고 눈물의 속에서 정사한 줄이야 누가 알아요.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눈물인가요,
인생이 눈물이면
죽음은 사랑인가요

-한용운 ‘고적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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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올해 만해대상을 수상한 다니엘 바랜보임의 피아노 소품 한 곡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곡은 바하의 평균율 1권 8번 E# 단조입니다. 이 곡은 그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의 장례식에서 그가 직접 헌사한 추모애도곡이었습니다. 이 음악을 들으시며 칠월칠석날에 만해 선생의 고적한 홀로움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https://youtube.com/watch?v=sQPU8i1uQho&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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