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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예찬: “오메, 단풍 들것네”

고독서원 2021. 10. 25. 14:29
2021.10.18 정선 아리랑 문화재단 뜰에 물드는 단풍

“오메,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메 단풍들것네’

‘어머나 어머나 단풍들겠네~~’ 단풍을 예찬한 영랑의 시, ‘오메, 단풍들것네’를 요즘 트롯으로 부르면 아마도 이리 했으리라. 시인 이풍호는 가을 햇빛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더니 이윽고 낙엽이 되어 내 발자국에 하나, 둘…고독으로 변한다고 노래했다.

“가을 햇빛은 슬프게
내 눈 속으로 자취 없이 찾아들고
뒤돌아보면 쉬지 않고 흘러가는 날들이
잔잔히 내 발자국 위에서
하나, 둘... 고독으로 변신한다. “

-이풍호, ‘단풍유감’ 가운데

모든 나뭇잎이 꽃으로 변한다는 고독한 가을이다. 코로나 사대 <페스트>로 새롭게 읽히고 있는 프랑스 현대 소설가 카뮈(Albert Camus)는 “가을에는 나뭇잎이 온통 꽃으로 변하는 두번째 봄이다(Autumn Is A Second Spring When Every Leaf Is A Flower)”라며 단풍을 극찬 한 바 있다. 자연을 찬미하는 것은 동서양이 매한가지인가 보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산행(山行)'이라는 시에서 "서리에 물든 단풍잎이 봄꽃보다 더 붉다(霜葉紅於二月花)"고, 단풍의 아름다움에 경탄한 바 있었다.

“비스듬한 돌길 따라 추운 산을 멀리 오르노라니
(遠上寒山石俓斜원상한산석경사),
흰구름 이는 곳에 인가 있구나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수레 멈추고 앉아 늦단풍을 아끼노라니(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그 단풍잎들 2월의 봄꽃보다 더 붉어라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두목(杜牧), '산행(山行)'

그리고 중국시사에서 두보와 쌍벽을 이루며 시성이라 불리우는 이백(李白)은 남산에 올라 바라본 단풍의 색깔이 너무 아름다워 가을의 “뛰어난 빛은 이름짓기 어려운데(秀色難爲名수색난위명)” “종적을 없애고 산봉우리에서 살아갈까(滅迹棲絶巘멸적서절헌)”이라며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은둔 귀속의 마음을 노래했다.

“문을 나와 남산을 바라보며
(出門見南山출문견남산)
목 길게 뽑아 살피니 온갖 생각 난다
(引領意無限인령의무한)
뛰어난 빛은 이름짓기 어려운데
(秀色難爲名수색난위명)
햇빛에 푸른 기운이 눈앞에 있는 듯
(蒼翠日在眼창취일재안)
때대로 흰 구름 일어나
(有時白雲起유시백운기)
하늘 끝에서 저절로 뭉쳤다 펴진다
(天際自舒卷천제자서권)
마음 속도 구름과 같았으면 하여
(心中與之然심중여지연)
흥취를 의탁하니 매번 얕지 않도다
(托興每不淺(탁흥매부천)
어떻게 해야 숨어사는 사람들 만나
(何當造幽人(하당조유인)
종적을 없애고 산봉우리에서 살아갈까(滅迹棲絶巘멸적서절헌)

-이백(李白), ‘종남산을 바라보며 자각은자에게 부치다(望終南山寄紫閣隱者망종남산기자각은자)’

“단풍의 화염”이라고 부르는 지리산 피아골의 단풍. 남명 조식 선생은 “피아골의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조선의 단풍을 아직 본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 뛰어난 빛은 형용할 수 없다. 영어로는 “beyond description”이라 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언어로 감히 표현할 길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심지어 아름다움을 넘어 경외감을 느끼게하는 자연의 미를 ‘숭고함sublime’이라고 한다.

우리시대 어느 시인은 ‘징한’ 사투리로 단풍이 뻘겋게 물드는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구숭지다.

“누가 저렇고롬 뻘건 물감을
찌끌어 놓았다야
천지 사방 불붙었당께
어쩐당가.

몽땅 불괴기 되겠시야.
오매 징한 것.”

-오세영, ‘뻘건 단풍’


또한 <인연>의 피천득 선생은 단풍지는 계절을 인생에 비유하며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합니다.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핏빛 저 산을 보고 살으렸더니
석양에 불붙는 나뭇잎같이 살으렸더니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바람에 불려서 떨어지오
흐르는 물 위에 떨어지오”

-피천득, ‘단풍’

그리고 마침내 비장한 단풍잎에서 정연복 시인은 죽음과 종말을 상상한다. 그 찬란하고 눈부신 아름다운 끝맺음을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의(壽衣)
단풍잎을 입고서

한줄기 휙 부는 바람에
가벼이 날리는

저 눈부신 종말
저 순한 끝맺음이여!”

-정연복의 ‘단풍’ 가운데


“사랑을 증명할 수 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말한 백석 시인도 “단풍든 시절은 새빨간 웃음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즐댄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살찐 띠몸이 불탄다/……시월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하지 못한 독한 원한이 빨간 자주로 지지우리지 않느뇨.”며 시월의 단풍을 이렇게 애끓게 노래했다.

“빨간 물 짙게 든 얼굴이 아름답지 않느뇨
빨간 정 무르녹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
단풍든 시절은 새빨간 웃음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즐댄다
어데 청춘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老死를 앞둘 두려움이 있느뇨
재화가 한끝 풍성하야 시월 햇살이 무색하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살찐 띠몸이 불탄다
영화의 사랑이 한창 현란해서 청청한울이 눈부셔 한다
시월 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시월단풍도
높다란 낭떨어지에 두서너 나무 개웃듬이 외로히 서서 한들거리는 것이 기로다
시월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하지 못한
독한 원한이 빨간 자주로 지지우리지 않느뇨.

-백석, ‘단풍’

용혜원은 “고독으로 온몸에 피멍이 드는” 가을 사랑의 차가운 열정을 노래한다.

“누구를 사랑했을까
봄에는 그토록 열렬히
사랑에 빠져들더니

가을엔 여름날의
열정을 잊지 못해
고독으로 온몸에
피멍이 드는가

나도 이런 사랑에 빠져들어
온몸이 화끈
달아올랐으면 좋겠다.”

-용혜원, ‘단풍’


그리고 시인 최갑수는 사랑이란 보상받지 못하는 위험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임을 어느 가을 산사에서 홀로 붉게 타오르는 외로운 단풍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절제된 시어로 노래했다.
https://youtube.com/watch?v=O7Jqu12WnLU&feature=share

“단풍만 보다 왔습니다

당신은 없고요, 나는
석남사 뒤뜰
바람에 쓸리는 단풍잎만 바라보다
하아, 저것들이 꼭 내 마음만 같아야
어찌할 줄 모르는 내 마음만 같아야
저물 무렵까지 나는 석남사 뒤뜰에 고인 늦가을처럼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굴만 붉히다
단풍만 사랑하다
돌아왔을 따름입니다

당신은 없고요.”

-최갑수, ‘석남사 단풍’


뭐라 딱히 한마디로 말하기 힘든 시월의 단풍은 꽃, 고독, 덧없는 인생, 찬란한 죽음, 눈부신 종말, 피멍든 사랑 그리고 홀로된 외로움을 노래한다.
https://youtube.com/watch?v=25oXoRon05o&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