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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엘뤼아르의 ‘자유’: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고독서원 2022. 1. 18. 20:19

……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대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희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

자유(自由)여.

-폴 엘뤼아르의 ‘자유’ 가운데


코로나 확산이후 2번의 격리생활과 6번의 코로나 검사를 했다. 2차례 백신과 부스터 샷 덕분에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또한 “얼굴없는 인간”의 삶과 거리두기 준수는 감기조차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철통 방역이 일상화된 시대에 살게 했다.

방역과 격리 그리고 거리두기로 인해 우리의 신체적 자유는 구속되었지만, 나름 벌거벗은 고독 속에서 정신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은 수많은 인류의 평온한 안식처를 파괴하고, 희망의 등대불을 무너뜨려 “권태의 벽”을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그 “벌거벗은 고독”과 “죽음의 계단 위에” ‘자유’의 이름을 쓰게 한다.

오미크론으로 인해 다시 ‘자유’를 빼앗긴 인류에게 프랑스 현대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 Liberte’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에 시적 영감을 준 이 시는 우리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이곳에 살기 위하여” 이 시를 읽으며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없는 희망 위에” 엘뤼아르의 ‘자유’를 소환하여,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2022년 새해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고독과 외로움 연구소

폴 엘뤼아르(Paul Eluard; 1895~1952)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본명은 외젠 에밀 폴 그랭델(Eugène Émile Paul Grindel). 피카소와 엘뤼아르는 삶의 뜨거운 연대자이자 정신적 동지였다. 엘뤼아르가 피카소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피카소를 "한 폭의 그림 앞에 설 수 있는 시인처럼 그는 한 편의 시 앞에 설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폴 엘뤼아르는 독일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평화와 자유, 정의를 관통하는 그의 대표작은 ‘자유’이다. 어린시절 가난으로 폐결핵에 걸려 공부를 중단하고 스위스 다보스에서 요양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요양 중에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휘트먼 등의 시를 탐독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였다가 독가스로 폐를 다쳐 평생의 고질(痼疾)병과 씨름하다가 1952년 11월 18일 과로와 협심증으로 숨을 거뒀다. 질병은 그에게 감옥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시집으로는 <고뇌의 수도 (首都)>(1926년), <사랑, 그것은 시(詩)>(1929년), 그리고 <정치적 진실>(1948년) 등이다. 국내 번역된 시집으로는 오생근 교수가 번역출판한 <이곳에 살기 위하여>가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엘뤼아르의 시에 대해서 가슴 아픈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엘뤼아르의 시집을 읽으면 저도 모르게 행복해진다. 그것은 그의 시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치유력같은 것이다.”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공유하게된 것은 최근 블로그 이웃 ‘zero’님께서 선물로 보내주신 엘뤼아르의 ‘그리고 미소를’이란 시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밝혀둔다.
피카소가 그린 폴 엘뤼아르 초상

‘자유 Liberte’(전문)

나의 학습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부(富)의 허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로움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약혼 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쪽빛 옷자락 위에
태양이 작렬하는 연못 위에
달빛이 환히 비추는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멋없는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곧게 뻗어나간 큰 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꺼진 램프 위에
모여 앉은 나의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나의 방 위에
빈 조개 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나의 강아지 위에
그의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의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된 불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균형잡힌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窓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초월한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대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희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自由여.

-폴 엘리아뤼, ‘자유’
<이곳에 살기 위하여> 오생근 역 참고

"나는 오래전부터 사랑이란 내 자유를 고통스럽게 희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달라졌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도 않고 질투도 하지 않으며 그 여자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 이제 나에게는 자유로와질 수 있는 용기가 있다."

-폴 엘뤼아르

https://youtube.com/watch?v=UyR-L1w6wII&feature=share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아직 동트지 않은 도시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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